광해군과 인조, 노무현과 이명박
- 최초 등록일
- 2008.12.05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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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해군과 인조, 노무현과 이명박
목차
1. 광해군과 노무현
1) 광해군
2) 노무현
3) 공통점
2. 인조와 이명박
1) 인조
2) 이명박
3) 공통점
3. 노무현과 이명박
본문내용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생활과 지혜를 엿볼 수 있고, 돌고 도는 역사의 순환 속에서 지금 현재의 모습을 바로보고 조망할 수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인조대와 정치적인 모습에서 비슷한 면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양란과 같은 국란을 겪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가운데, 그 모습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 현재의 실태를 알아보고자 한다.
1. 광해군과 노무현
1) 광해군
광해군은 선조의 대를 이어 조선의 왕에 오른 임금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 오를 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 주된 이유는 후궁의 아들로 선조의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미처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선조가 몽진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총명함을 인정받고 있던 광해군은 비록 자격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 위기 상황이 해소되고 선조의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인목대비의 몸에서 뒤늦게 태어나고 세자책봉 문제에 대해 인목대비 측의 공격이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지만 선조의 죽음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마침내 광해군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이들의 존재는 광해군에게 항상 위협이 되었고, 왕권 안정을 위해서 이들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폐했다가 증살하고(살제), 인목대비도 대비 자리에서 쫓아내 서궁에 유폐했다(폐모). 그리고 당시 중국대륙에서 명이 쇠퇴하고 청을 세우는 후금이 흥기하던 때였는데 광해군은 후금에 대해 유화적인 외교정책을 통해 중립외교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정세력들은 오랑케를 섬기는 짓이고, 임진왜란 때 우리를 구해준 명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해서 극렬히 비난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