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가야의 건국설화와 전기가야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가야의 명칭과 어원
1) 가야의 명칭
2) 가야의 어원
2. 가야의 건국 신화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3. 전기 가야의 성립과 성장
1) 전기 가야의 성립
2) 전기 가야의 성장
4. 전기 가야 연맹의 동요
1)포상팔국 전쟁
2)임나가라 중심의 재통합
3)고구려신라 연합군의 침공과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본문내용
1. 가야의 명칭과 어원
1) 가야의 명칭
원사료적 가치가 있는 고려시대 이전의 사서 및 금석문 등을 통해 볼 때 가야를 가리키는 한자 표기는 加耶, 伽耶, 伽倻, 加羅, 伽羅, 迦羅, 呵囉, 枷羅, 伽落, 駕落 등 10여 종이 있다. 살펴보면 먼저 ‘가락’(駕落)의 경우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포함해 아홉 번 나온다.
중략..
2. 가야의 건국 신화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천지개벽 후에 이 땅에는 아직 나라로 부르는 칭호가 없고 임금이나 신하라고 부르는 칭호도 없었다. 여기에 있다는 것이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 아홉 간이 있었으니 추장이 되어 백성들을 통솔하였으며, 호수는 무릇 1만 호에 7만 5000인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산과 들에 모여 살면서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먹었다. (중략) 목소리의 지시대로 9간등이 구지가(龜旨歌)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얼마 안 되어 쳐다보니 다만 보랏빛 노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 땅에 닿아 있었고 노끈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로 싼 금합(金盒)이 있었다. 그것을 열고 보매 둥글기가 해 같은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랍고도 기뻐서 함께 수없이 절을 하다가 조금 뒤에 다시 알을 싸가지고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 탁자 위에 두고는 각각 흩어졌다. 그 후 12일이 지난 다음 날 샐 무렵에 무리들이 다시 함께 모여 합을 열었더니 알 여섯 개가 사내아이로 화하였는데 얼굴들이 매우 틀스러웠다. (중략) 그달 보름에 왕위에 오르니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首露) 혹은 수릉(首陵) 이라고 하고, 나라를 대가락(大駕洛)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가야국(伽耶國)이라고도 일컬었으니, 즉 여섯 가야의 하나이다. 남은 다섯 사람은 각각 돌아가 다섯 가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三國遺事』 卷 第2, 紀異 第2 駕洛國記).
이 신화의 줄거리를 통해 추론해낼 수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김태식, 『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97, pp.3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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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김태식,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제 1권 , 푸른 역사, 2002.
김태식,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제 2권 , 푸른 역사, 2002.
김태식, 『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97.
김태식, 『加耶聯盟史』, 一潮閣, 1993.
남재우, 「가야의 建國神話와 祭儀」, 『한국고대사연구』39, 한국고대사학회, 2005.
박대재, 「弁韓의 ‘王’과 狗邪國」, 『韓國史學報』24, 고려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