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와 예술의 경계
- 최초 등록일
- 2008.06.21
- 최종 저작일
-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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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통해 살펴 본 포르노그라피와 예술의 경계.
부제-윤리가 예술을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
포르노그라피와 예술의 경계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통해 살펴
본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성은 예술이 될 수 없을까?
ⅱ. 윤리가 예술을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
Ⅲ. 결론
예술가는 앞서나간다.
본문내용
Ⅰ. 서론
페이지를 열면 전라의 두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슬며시 떠오르는 `옵세션(Obsession)`. 흔히 강박 관념, 망상, 집념 등의 쓰이는 이 단어의 뜻에 걸맞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이 광고가 바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옵세션(Obsession)` 향수 광고다. 이 광고는 누드의 미학을 광고에 접목시킨 전범이 된 작품으로 1989년 당시 미국인 2만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좋게 기억하는 인쇄광고`에 선정되었으며, 4년 연속 `기억율 1위 광고`에 기록되기도 했다. 에로티시즘이 예술적으로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성공적으로 증명해 준 대표적 예인 것이다. 노출 정도가 포르노그라피의 한 장면과 비교해서 뒤쳐질 것이 없지만, 결코 추하거나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라기보다 감상하고 싶은 오브제로 비춰진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무엇일까? 벽보에 붙은 이국의 세 남녀가 분홍빛 침대시트 위에서 엉켜 몽롱한 눈빛을 띄고 나를 바라봤을 때, 당시 고3이었던 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강렬한 색채를 떠올렸었다. 온갖 외설의 잡합 속에서 마치 성기노출과 섹스가 영화의 전부인양 칠해져버린 이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예술적이었는가는 아마도 성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름하는 데서 시작하리라 생각한다.
Ⅱ. 본론
ⅰ. 성은 예술이 될 수 없을까?
성의 해방이 곧바로 정치의 해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겉으로 보면 그럴싸해 보인다. 성과 정치적 파시즘의 관계가 오랫동안 담론의 대상이었던 까닭도 있고, 성이 인간 욕망의 중추적 자리에 입지함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동안 억압의 대상이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