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간호학 - 프로이트의 생애와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8.04.29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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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신간호학 - 프로이트의 생애와 업적
목차
- 프로이트의 생애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성격학
* 참고문헌
본문내용
생애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에 오늘날의 체코 슬로바키아의 메렌 근처의 작은 도시인 프라이베르크에서 유대인인 그의 아버지 칼라몬 야콥 프로이트와 두 번째 부인인 아말리 나탄손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때 집안의 경제적인 이유로 빈으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학교를 모두 졸업하여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1973년 가을에 빈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을 하게 된다. 연구소를 거쳐 병원 등에서 일하던 그는 1885년 파리의 사르베토리에르 정신병원에서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였고, 1889년 여름에는 프랑스의 베르넴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보게 되어,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1893년 프로이트는 요제프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치유의 방법을 연구한 끝에 카타르시스법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1896년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 자신이 처음 인지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욱 깊은, 프로이트의 생애에서 폭넓고 깊은 상처를 의미했다. 자기분석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와의 논쟁은 1900년에 출판된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 《꿈의 해석》을 쓰기 위한 본질적이며 심리적인 전제였다.
1900년 이후 프로이트는 꿈 ·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고, 1905년에는 소아성욕론을 수립하였다. 그의 학설은 처음에는 무시되었으나, 1902년경부터 점차 공명하는 사람들(슈테켈, 아들러 융, 브로일러)이 나타났다.
1902년 이후에는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알프레드 아들러, 루돌프 라이틀러, 막스 카하네, 빌헬름 슈테켈 등)이 모여 프로이트의 연구 내용과 순수 이론적인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빈, 취리히, 런던과 부다페스트에서와 같이 점차 형성되어 가는 정신분석의 다양한 지역적 중심들 사이에서 정기적인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던 프로이트는 국제 정신분석 학회를 조직했다.
참고 자료
프로이트와 현대 철학/열린책들/알프레트 쉐프/2001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홍신문화사/Erich Fromm/1994
(정신분석과)프로이트/바다출판사/마가렛 마켄하우프트/2002
프로이트/김영사/리차드 아피냐네시/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