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고학의 연구사적 검토
- 최초 등록일
- 2007.11.06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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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고고학의 연구사적 검토를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신라 고고학의 연구사적 검토
1. 서론
2. 일제강점기와 그 영향
3. 경주고도개발사업과 고분편년 중심의 연구
4. 황룡사지의 발굴과 신라 고고학 영역의 확대
5. 신라 고고학의 새로운 방향
본문내용
1. 서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볼 때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거의 1천 년을 존속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견해 중에서 신라의 역사를 각기 상대․중대․하대 혹은 상고․중고․하고 등 몇 개의 분기로 이해하여왔다. 이와는 별개로 신라에 의한 삼국의 통일을 중요시하는 관점에서는 신라와 통일신라, 혹은 신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 시대와 관련된 또 다른 문헌자료인 「삼국지」동이전에 의하면 적어도 3세기까지는 아직 삼국 가운데 신라로 부를 수 없는 단계인 삼한의 사로국으로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신라 역사의 전반부를 연구자들의 인식에 따라 각기 원삼국시기․삼한시기, 철기시대 후기 또는 삼국시대 전기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2. 일제강점기와 그 영향
대부분의 근대적인 의미의 학문이 그러하지만 고고학의 경우에 있어서도 일본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물과 유적을 직접 다루는 고고학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일인연구자들에게 전적으로 독점되었다. 신라유적에 대한 기초 조사는 총독부 설치 전인 1902년 이미 세키노에 의해 시행되어 1904년 「한국건축조사보고」라는 보고서로 발간되었다. 1906년에는 이마니시가 경주 황남동의 한 고분을 발굴하였는데, 이것이 공식적인 신라고분 발굴의 시작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발굴조사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본격적인 조사는 1921년 금관총이 발견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경주시가지의 확장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유물층에서 금관을 비롯하여 금제과대와 요패, 유리용기 등 부장품이 출토되면서 금관총으로 명명된 고분의 발견은 이후 신라고분 연구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고,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참고 자료
한국고대사 입문, 성림문화재연구원http://www.sungli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