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에도막부
- 최초 등록일
- 2006.12.16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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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도막부에 대해서
목차
1. 에도막부의 성립
2. 막번체제와 다이묘 통제, 조정ㆍ사원의 통제, 농민통제
3. 신분제도
4. 에도초기의 대외관계와 쇄국
5. 막번체제의 전개와 겐로쿠 문화
본문내용
1. 에도막부의 성립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대신해 정무를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정권의 5다이로 중 한 명으로 조선 출병을 하지 않아 그 세력이 온전하였으므로 히데요시 이후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대두에 대항한 세력들과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패권을 장악하고 1603년에는 정이대장군에 임명되어 에도막부를 개창했다. 이후 이에야스는 잔존하던 도요토미 씨 세력의 보루인 오사카 성을 공격하여 도요토미 씨를 멸망시키고 전국의 지배를 확립했다.
2. 막번체제와 다이묘 통제, 조정ㆍ사원의 통제, 농민통제
막번체제란 막부의 장군과 지방의 번주인 다이묘가 토지를 매개로 주종관계를 맺고 인민을 지배하는 체제를 말한다. 에도막부는 아직 정권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해 엄격한 통제정책을 폈다. 막부는 다이묘를 통제하기 위해 신판, 후다이, 도자마의 배치를 달리하고 1국1성령을 내려 다이묘의 거성을 제외한 모든 성을 파괴시키고 군사력을 약화시켰으며 참근교대, 신규축성금지, 다이묘간의 자유통혼 금지를 규정한 무가제법도를 공포하여 이를 어길 시에는 개역ㆍ감봉ㆍ전봉 등의 처벌을 내렸다. 특히 참근교대는 매우 유효한 다이묘 통제책으로 다이묘는 1년 교대로 자신의 영지와 에도를 번갈아 거주해야 하며 처자는 인질로서 에도 성에 거주하게 하는 제도였다. 이러한 이중생활과 왕복경비는 다이묘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막부의 축성이나 대하천 공사를 다이묘들에게 부담시켜 번의 재정은 점차 고갈되어갔다.
또한 막부는 조정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주력하여 1615년 금중병공가제법도를 제정하여 천황과 공가의 정치활동을 규제하였으며 천황에게는 학문을 제일로 하도록 추진했다. 그리고 쿄토쇼시다이를 설치하여 조정과 공가를 감찰하고, 다이묘가 조정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원에 대해서는 제종사원법도를 공포하여 사원을 통제하는 한편, 기독교를 금지시키기 위해 누구나 사원의 단카가 되도록 하여 사원은 막부의 보호아랴 민중지배의 말단기관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