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단과 문수성 그리고 신파극
- 최초 등록일
- 2006.12.0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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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혁신단
2. 문수성
3. 신파극
-1. 신파극 사적 위치 재고의 필요성
-2. 신파극의 교량적 영향관계
1) 신파극과 신소설
2) 신파극과 고전 유산
3) 신파극과 사실주의 근대극
-3. 신파극의 의의
본문내용
1. 혁신단
혁신단은 상인출신의 청년 임성구(1887~1921)에 의해 창단됐다. 임성구는 전문적인 연극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명동성당 뒤에서 상업을 하는 동안 일어를 터득하고 진고개의 일인극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일본신파극을 어깨너머로 배워 신파극단을 창단했다. 일본 연극장에서 신파극을 배운 임성구는 단원 한창렬, 고수철, 김순환, 황활삼, 안석현, 임운서, 이원규, 정명구, 김태식, 임인구 자금제공자 박창환과 함께 혁신단을 만든다. 혁신단은 남대문 밖 어성좌에서 <불효천벌>을 창단 공연으로 가진다. 권선징악, 풍속개량, 민지개발, 진충갈력을 표어로 내세운 것을 보면 신파극을 교화 수단의 하나로 간주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혁신단의 <불효천벌>은 관객 동원에 실패한다. <불효천벌>은 일본 신파극단이 공연한 바 있는 <사지집념>의 번안물이었는데, 일본신파를 어깨 너머로 배운 정도로는 특히 연기의 측면에서 신파극의 양식화된 부분을 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후 혁신단은 뒤를 이은 신파극단들에게 자극을 받아 일본 신파배우를 스승으로 두고 연기 훈련을 받는 한편 대대적 홍보전을 펼치며 상업극단으로서 자리하게 된다. 이 때의 레퍼토리가 <육혈포강도>이다. 역시 일본신파 <피스톨강도 청수정길>을 번안한 공연이었다. 당시 신파 공연의 형태는 단장이 연극의 전체 내용과 막마다 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가면서 공연을 했다. 초창기에 신파배우를 했던 변기종은 이에 대해 “개막을 하자면 먼저 개막 인사와 연극의 내용을 관객에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막수에 따라서 막막마다 개막 전에 설명해주었고, 끝막에는 단장이 나가서 연극의 종결을 짓는 설명을 하고 다음날의 연극선전을 하며 꼭 와서 봐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양식이었던 만큼 관객에게 가르치며 연극 공연을 했던 것이다.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주제는 관객을 끌었고, 신파극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객이 매일 8, 9백명이나 되어 연흥사 극장은 확장 공사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