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극
- 최초 등록일
- 2003.06.12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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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 근대극
모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연극 추구할 때
이념의 과잉이 불러운 낙후된 연극현실
문화예술 공공지원은 비평지면의 확장에도 기여해야
근대극의 확립
본문내용
한국근대극은 전통의 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장연극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연극비평 역시 전통을 망각했다. 이것은 근대극 초기인 1900년 무렵의 이야기다. 당시 우리 지식인들은 세계문명사의 지각생이라는 열등의식과 하루라도 빨리 서양문명을 수용해서 문명국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너무 오랜 동안 전통에 매달리다가 강대국의 간섭을 받고, 이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해졌다. 전통은 버려야 할 것·낡은 것·귀찮은 관습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청년들 사이에 확산되었고, 선교사들 혹은 일본을 창구로 해서 흘러드는 신문명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새로운 것·지켜야 할 관습으로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런 시대분위기에서 전통은 빠른 속도로 망각되었다.
전통과 관련해서, 근대극 초기의 연희개량운동을 간과할 수 없다. 구파극(구극)은 신파극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사용했다. 판소리를 위주로 한 광대의 연희를 통칭 구파극이라 했다. 일본에서 명치시대의 신파극에 대하여 기성의 가부키(歌舞伎)를 구극 혹은 구파극이라고 한 것과 같은 용례이다. 희귀하게도, 당시 일부 연희인들에게 구파극은 계승의 대상이자 개량의 대상이었다. 광무대는 구파극 전용극장이었다. 1907년, 광무대 전신인 동대문내 전기창에 부속한 활동사진소(연극장)에서는 연희개량의 방식으로 <춘향가>를 공연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