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과 김춘추
- 최초 등록일
- 2006.11.22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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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개소문과 김춘추에 대한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평가 위주로 되어있어요 `- `
목차
1. 머리말
2. 두 사람의 생애
3. 두 사람에 대한 그간의 평가
4. 642년의 두 사람의 담판
5. 반은 영웅, 반은 흉역
6. 나머지 말
본문내용
1. 머리말
7세기 중반 3국간의 상쟁과 중국의 수. 당제국의 출현과 팽창에 따른 국제 정세 변동의 파장이 서로 어우러져 급격한 변화를 낳았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많은 인물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부침하였는데, 그 중 그 역할과 영향 면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인물로는 역시 연개소문과 김춘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유력 귀족집안 출신으로 등장해 640년대 각각 정변을 통해 최고 실력자로 등장했고, 양국의 정치를 주도해 갔다.
이 글에서 두 사람을 논급 하는데 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두 사람의 행적을 살핌으로 삼국말기의 역사를 이해함이고, 다음은 역사에서의 인물의 평가에 대한 기준을 생각해 보자는 의도이다
2. 두 사람의 생애
(1) 연개소문
연개소문의 지반은 고구려 후기 유력한 지위를 누리던 귀족이었다. 연씨 집안은 기록에 따르면 6세기 후반 무렵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후로 최고 귀족으로 번성하였다. 그는 630년 무렵 천리장성을 쌓는 일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지배층내의 알력이 심화되고, 당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던 연개소문은 당에 대한 강경책을 견지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갈등 상황에 연개소문측이 선수를 쳐 새 왕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기본적으로는 고구려 후기 이래의 귀족 연립 정권체제가 유지되었으며, 다만 연씨 측의 세력이 보다 강화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과의 대결자세 견지와 신라에 대한 군사적 압력 가중으로 그의 대부분 집권기간은 당 및 신라와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역사적 인물로서 강경한 대외정책과 전쟁수행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2) 김춘추
6세기 중엽 기후로 신라는 난관에 봉착해있었다. 김춘추는 왕실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김유신과 정치적으로 결속하여 647년 상대등 측의 무장투쟁에서 승리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654년 진덕 여왕이 죽자 김유신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즉위했다. 660년 신라 공략에 나서 당. 고구려와의 문제가 심화되던 때, 고구려 공략전과 그 뒤의 당과의 대결, 고구려. 백제의 통합 등의 일은 그의 후계자에 의해 수행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