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과정
- 최초 등록일
- 2022.08.18
- 최종 저작일
-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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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삼국통일 과정
2. 백제의 입장에서 본 삼국통일
1) 백제의 마지막 군주에 대한 재평가
2) 사비성 함락 전 백제의 대외상황
3) 사비성 함락 후의 백제
4) 백제의 멸망
3. 고구려의 입장에서 본 삼국통일
1) 연개소문의 독재정치
2) 연개소문의 후계구도
3) 고구려 유민의 향방
4) 고구려가 삼국통일 했다면
4. 신라의 입장에서 본 삼국통일
1) 백제와 신라 사이의 갈등 – 고타소의 죽음
2) 김춘추의 청병외교
3) 나당연합
4) 나당전쟁 – 당의 협약 불이행
5. 당나라 관점에서의 삼국통일 진행과정
본문내용
신라의 삼국 통일은 따로 존재하던 삼국이 통일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 중요한 사건입니다. 중요한 사건인 만큼 많은 의의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예전부터 많이 다뤄졌던 주제인 만큼 좀 더 자세하게 삼국통일 과정과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여러 의견들과 관점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뿐만 아니라 삼국통일에 많은 개입을 하였던 당나라의 관점까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통일 과정
신라의 역사2, 이종수 저, | 김영사 |
우선 삼국통일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삼국통일 과정은 크게 9년과 또 다른 9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의 9년은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9년이고 뒤의 9년은 신라와 당나라 간의 전쟁기간입니다.
642년 백제의 장군 윤충은 대야성의 도독 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를 죽입니다. 이때 죽임을 당한 고타소는 김춘추가 아끼던 딸이었습니다. 큰 슬픔에 빠진 김춘추는 이날을 계기로 백제를 정복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648년 김춘추는 신라만의 힘으로는 백제를 점령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고구려를 찾아가지만 연개소문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동맹 체결에 실패하고 당나라를 찾아갑니다. 당 태종은 신라의 청병을 받아들이고 고구려와 백제 평정 이후에 평양 이남과 백제의 토지는 신라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660년에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연합군 18만 명과 백제의 계백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황산벌에서 전투를 합니다. 여기서 백제는 패하게 되고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망을 가서 5일을 버틴 후 항복을 합니다. 이로써 백제를 멸망하게 됩니다. 당은 신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백제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당나라가 통치하려 합니다.
이듬해 661년에는 김유신이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 공격에 나서지만 백제의 잔적이 길을 막아 그들을 물리치느라 고구려 공격에 실패합니다. 연개소문의 죽음이후 그 아들들의 권력다툼으로 나라의 기강이 흔들릴 때 나당 연합군이 몇 년에 걸쳐 수차례의 정복을 시도합니다. 그러던 중 668년 평양에서의 전투에서 신라군이 고구려의 대진 (많은 군사로 이루어진 진영)을 부수자 고구려군의 기세가 꺾이게 됩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