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임나일본부
- 최초 등록일
- 2006.05.19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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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표수업을 위해 쓴 레폿입니다. 교수님이 까다로운 수업이라서 건성건성 할 수 없었죠.. 엄청 신경써서 쓴 레폿입니다. 그랬던 만큼.. 당연 결과는 좋았죠..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정리한 만큼.. 교수님께 정리가 깔끔하고 잘되어 있다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
목차
들어가며
임나일본부와 임나일본부설
막연한 선입관과 감정적 반발
Ⅰ. 임나일본부 연구가 걸어 온 길
1. 고대의 연구 현황
2. 근세의 연구 현황
3. 근대의 연구 현황
4. 현대에 이루어진 연구
Ⅱ. 종래의 연구에 대한 비판
맺음말
새로운 연구방향
본문내용
임나일본부와 임나일본부설
‘임나(任那)’란 대체로 낙동강 서쪽의 가야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기록에는 매우 드물게 나오지만,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때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강수가 원래 임나가라 출신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렇게 임나가 지역명칭이라면, ‘임나일본부’란 그곳에 설치된 관부(官府)를 뜻하게 된다.
그 명칭은 『일본서기』의 6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기록에 빈번히 나타나지만, 우리쪽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존재 여부조차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쪽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를 무턱대고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 고대 기록은 가야나 임나에 관한 기록 자체가 극히 적은 실정이고, 또 ‘임나일본부’는 당시 일본 쪽에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능과 성격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군사적 성격을 가진 지배기구, 상업적 목적을 띤 무역기관, 외교기관 등으로 다양하게 파악한다. ‘임나일본부설’이란 그 중에서 군사적 성격을 특히 강조하여 “고대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일부 일본인의 의식 소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서기』를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 서구 열강의 위협 앞에서 한국을 침략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정한론(征韓論)이 대두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고, 한국을 강점한 이후에는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역사적 근거로 종종 이용되었다.
참고 자료
이영식,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의 역사”,『우리역사를 의심한다』,서해문집, 2002
한국역사연구회, “임나일본부, 무엇이 문제인가”,『한국고대사 산책』,역사비평,2002
이희근, 『한국사는 없다』, 사람과사람,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