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개론]화랑도와 현대교육
- 최초 등록일
- 2006.05.09
- 최종 저작일
- 2006.03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라시대의 교육체제인 화랑도에 대해서 알아보고, 현대의 교육이 화랑도 교육에서 배울점을 알아보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화랑도의 기원과 조직
a.화랑도의 기원
b.화랑도의 조직
ⅱ)화랑도의 교육내용
ⅲ)화랑도의 교육목적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병립하던 7세기 중엽까지를 말하는 삼국시대에는 문자의 사용과 더불어 형식적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고구려(372년) 유교 중심의 교육을 당나라에서 모방해 암기식 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관학으로 태학과 사학으로 경당이 생겨남으로써 교육이 효과적으로 퍼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285년)도 유교 경전을 많이 읽은 사람을 칭하는 ‘박사’라는 칭호가 있고, ‘내법좌평’이라는 현재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하는 지위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교육이 행하여 졌음을 알 수 있다.
Ⅱ. 본론
ⅰ) 화랑도의 기원과 조직
a. 화랑도의 기원
「삼국사기」진흥왕 37년(576) 조 봄에.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이보다 앞서 군신이 인재를 찾기가 힘든 것을 염려한 생각 끝에 무리를 모아 함께 교유(交遊)하도록 하고, 그 행의(行義)를 살펴 등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미녀 2명을 뽑았는데,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었다.
두 여자는 3백여 명의 무리를 모았는데, 서로 질투 끝에 싸우기 시작했다. 준정이 먼저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취하도록 술을 강권한 다음 끌어다 강물에 던져 죽였다.
그 일이 발각되어 준정은 곧 복주(伏誅)되고, 그 무리는 해산되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는 미모의 남자를 택하여 치장시킨 다음, 화랑이라 부르고 받들게 하자, 다시 무리가 모여들게 되었다. 이 때부터 화랑의 무리는 도의(道義)로써 몸과 마음을 연마하고 가악(歌樂)으로써 즐기며 산수(山水)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들은 안 가는 곳이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