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칼을 든 종교개혁가 츠빙글리
- 최초 등록일
- 2005.06.10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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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각주있음
목차
1. 츠빙글리가 Zurich로 오기까지
2. 종교개혁가로 나서다
3. 츠빙글리의 개혁
4. 루터와의 성찬 논쟁 - 마르부르크 대담
5. 츠빙글리의 죽음과 글을 마치며
본문내용
16세기 종교개혁의 양대 기둥이며, 오늘날 개신교 목사들의 원조이며, 또한 모범이 되는 루터와 칼뱅은 그들이 치열하게 전개했던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속에서도 자신의 침상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 종교전쟁의 많은 희생자들에 비해 혁명가답지 못한 죽음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임종을 지켜봐 주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에게 추모를 받을 수 있고 최후의 순간에 위대했던 자신의 업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살아서는 종교혁명가였지만 죽을 때는 목회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루터와 칼뱅이었다. 하지만 서기 1531년, 스위스 카펠(Kappel)의 들판에서 이들과 같은 종교개혁가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임종에는 종교개혁가를 찬미하는 추종자들도 없었으며 종교개혁가 자신도 임종의 순간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그가 죽은 곳은 전쟁터였고 그의 손에는 성경 대신에 한 자루의 칼이 쥐어져 있었을 뿐이다. 어째서 종교인이 칼을 들고 전쟁터 속에서 죽었을까? 그는 종교개혁가 이전에 목회자로써 본분을 다하며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이 목회자라고 인식했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였겠지만 그는 목회자 이전에 개혁가였고 또한 한 도시를 이끌어가는 정치 리더였기 때문에 편안한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고 전쟁터로 달려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스위스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이야기 할 때, 우선 루터와 칼뱅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루터와 칼뱅이 이룩한 업적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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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올리비에 크리스탱, 『종교개혁』, 시공사, 1998
한스 숄. 『종교개혁과 정치』, 황정욱 옮김, 기독교문사. 1993
마르틴 하아스, 『훌드리히 츠빙글리』, 정미현 옮김. 한국기독교장로회신학연구소. 1999
토마스 M 린제이, 『종교개혁사』, 교문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