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구한말 조선의 쇄국정책
- 최초 등록일
- 2005.05.14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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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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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천주교 박해정책
2) 통상수교 거부정책
3) 외국과의 전쟁
ㄱ. 병인양요
ㄴ. 신미양요
4) 흥선대원군의 몰락
5. 결론
본문내용
1. 우리나라 천주교 수용배경과 수용
○ 근세 초기 지리상의 발견은 서세동점을 초래하였고, 동시에 서학이 동점하는 계기가 되어서 중국과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되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진출하여 있던 예수회는 스페인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를 조선에 파견하여 일본인 천주교 장병들의 신앙을 돌보게 하였다.
○ 세스페데스는 1593년(선조 31년)말부터 약 1년 반 동안 부산 부근의 일본 진영에 머물면서 장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더불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민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을 보고, 조선에서의 전도를 시도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서학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서 좌절
○ 한편 중국에 진출한 예수회 선교사들도 북경에 내왕하는 조선 사신들을 통하여 점점 조선 전도에 관심, 북경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직접 조선에 와서 전도할 수는 없었으나 조선사신들을 통한 간접적인 시도는 가능, 중국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저술한 한역서학서 등의 서적들이 계속 조선에 도입되어서 남인학자들 사이에 연구되어 실학 운동에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낳게 된다.
○ 우리 나라에서 천주교는 1784년(정조8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과 함께 신앙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비로소 교회가 창설. 1786년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고백성사, 성체성사도 집전하기 위하여 이승훈, 유항검, 권일신등 10인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유항검은 그들의 성사행위가 불법임을 알고, 북경에 윤우일을 파견하여 조선교회에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간청.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