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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영랑 시인의 작품을 제 1기부터 제 3기까지 나누어 분석합니다. 문학사에서 그의 시사적 위치를 정의하며 마무리 합니다. 감상 및 사견이 약간 들어 있습니다.
목차
1. 시인 소개
2. 작품 분석 및 감상
1) 제 1기
2) 제 2기
3) 제 3기
3. 시사적 위치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시인 소개
1930년대 전반기 ‘우리 시문학의 가장 큰 빛‘의 하나로 찬사를 받게 되는 시인 영랑 김윤식은 1903년 1월 16일(음력 12월 18일) 전남 강진군 강진면 남성리 탑골 마을의 북산 아래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규모의 지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영랑은 아버지의 경제적 뒷받침 아래 강진에서 자라며, 1911년 강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915년에 졸업한다. 다음해인 1916년에는 김은하와 결혼하게 되지만 1917년에 바로 사별하게 된다.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는 뒷날 '시문학' 창간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랑의 생애와 문학에 있어서 그의 고향 강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영랑은 그의 생애 중에서 7년 정도의 유학 기간과 말년의 2년간 서울 생활을 제외하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 강진 땅에 살며 서정시를 써낸 대표적인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다음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영랑은 거기서 최승일을 만나게 된다. 휘문의숙 3학년 시절인 1919년에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룬다. 이후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시인 박용철을 만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된다.
<중 략>
화자는 겪어왔던 봄을 통하여 사라진 모란이 다시 피어날 것을 알고 있으며 피어나는 모란이 찬란할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계절의 순행에 화자는 그 모란이 또다시 질 것을 알고 있다. 찬란함과 슬픔, 핌과 짐, 이 모든 것은 자아가 반복적으로 겪는 모순적 감정이기도 경험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세계이다. 화자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다 말하지만 찬란하고도 슬픈 봄은 세계가 순환되기에 자아로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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