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22.10.24
- 최종 저작일
-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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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희궁 감상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서론
1. 주제선정
II. 본론
1. 경희궁의 역사
1) 조선시대
2) 일제강점기
3) 광복 이후
2. 경희궁의 건축물
1) 흥화문 (興化門)
2) 숭정문 (崇政門)
3) 숭정전 (崇政殿)
4) 자정전 (資政殿)
5) 태령전 (泰寧殿)
III. 결론 및 의견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1. 주제선정
우리나라의 민속과 문화유산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산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해인사의 장경판천이나 석굴암의 불상, 그리고 세계최초의 활자라고 할 수 있는 “직지심체요철” 과 조선왕조실록, 종묘 등의 문화유산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며, 귀중한 연구 자료로도 활용되어지고 있다. 나는 현재 수도권에 살고 있으며,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서울의 문화유산들에 대한 큰 관심을 가져왔다. 수도권에 있는 많은 문화유산들 중에서도 ‘경희궁’ 은 조선시대의 왕들이 사용했던 궁궐로 우리나라의 역사 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서울 5대 궁궐 중에서도 파괴가 많이 되었던 궁궐로 꼽히는 특징이 있으며,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부가 파괴되었던 기록이 있고, 그나마 남아 있던 경희궁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정부가 남은 부지와 건물들을 다시 축소시키면서 현재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경희궁은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유산들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도 보존을 많이 받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현재에도 서울시에서 경희궁을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해결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로 인하여 빠르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문화유산 중에서도 경희궁을 주제로 선정하였고, 앞으로 경희궁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복구와 보존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I. 본론
1. 경희궁의 역사
1) 조선시대
경희궁의 이전 이름은 “경덕궁 (慶德宮)” 으로 불려왔으나, 1760년 영조가 경덕궁의 이름인 “경덕(慶德)” 이 원종 시호인 “경덕(敬德)” 음이 같아 궁궐의 이름을 변경하였는데, 그 이름이 바로 “경희(慶德)” 이다. 경희궁의 터는 인조의 아버지 “원종 (정원군)”의 사저가 있었으며,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재건축된 창덕궁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인왕산 아래에 새롭게 “인경궁 (仁慶宮)”을 짓다가 정원군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풍수지리사의 말을 듣고 왕기를 누르기 위해 집을 빼앗아서 1617년-1623년 사이에 경덕궁을 지었다.
참고 자료
2004 글로벌 세계대백과 사전 범한출판사
박상현 2017 “90년전 일제가 훼손한 ‘경희궁’ 회상전‘ 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130027451005
2004 서울특별시청 보고서 ‘경희궁 영조, 훼철 자료조사 및 활용방안’
배한철 2013 “일제가 망친 경희궁 내년부터 복원한다.”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3/01/66638/
이상해 2004 궁궐, 유교건축, 서울솔 출판사
인터넷 홈페이지 서울역사박물관 https://web.archive.org/web/20070824171731/http://www.museum.seoul.kr/kor/gyeung/1173416_698.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