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자키아라타 분석
- 최초 등록일
- 2022.10.13
- 최종 저작일
-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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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31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태어난 이소자키 아라타는 열네 살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그 경험이 건축의 바탕이 됐다.
“(내가 살던 오이타) 해안을 가로질러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그곳은 완전히 폐허가 됐고 건물이나 도시도 없었다. 건축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은 ‘부재’였고 사람들이 집과 도시를 재건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소자키는 일본이 전쟁 이후 재건할 당시 직면했던 불확실성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즘
활동초기인 1960년대에는 스승인 단게겐조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적 성향을 보이며, 이는 오이타 시립도서관과 공중도시 계획안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작품인 츠쿠바 센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수를 볼 수있다.
서양-동양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은 그의 첫 번째 해외 의뢰 프로젝트였다. 논란이 많았고 지리적으로도 실험적 이었던 붉은 인도 사암 건축물은 동서 관계의 상호보완적 성격을 소환하고 황금 율과 음양이론을 활용하여 유럽과 미국의 디자인을 널리 알 리려는 일본의 비전에 힘을 실어주면서 동서 사회 간의 상호교류를 재정립하였다. 하얏트재단 대표인 톰 프리츠커(Tom Pritzker)는 “이소자키는 서구문명이 전통적으로 동양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일본을 벗어나 건물을 지은 첫 번째 일본 건축가 중 한 사람이며, 당시 세계 시민정신에 의해 확실하게 영향을 받은 그의 건축은 매우 국제적이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건축은 그런 소통을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세계적-지역적
1992년 하계올림픽을 위해 설계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팔라우 산 호르디. 돔형 지붕은 카탈로니아의 둥근 천장 기술을 참고하여 세워졌고,경사진 형태는 불교사원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소자키는, 건축에 대한
요구는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이고 그 두 힘은 동일 한 하나의 도전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한 선구자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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