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공양왕릉의 실체
- 최초 등록일
- 2021.04.11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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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양과 삼척의 공양왕릉 일반 사항
2. 문헌에서 공양왕릉
3. 공양왕릉의 무덤 양식
4. 위치와 관련된 기록
5. 폐허가 된 공양릉과 개축되어진 공양릉
본문내용
1. 고양과 삼척의 공양왕릉 일반 사항
1.1. 고양 공양왕릉
능의 형태는 왕과 왕비를 쌍릉형식(왕과 왕비를 좌우에 나란히 배치하는 형식)으로 하였다. 능 앞에는 각각 비석(碑石)과 상석(床石)이 하나씩 놓여 있고, 양릉의 가운데에는 장명등(長明燈) 하나와 그 앞에 석호(石虎) 하나가 남아 있다. 능 양쪽에는 문무석(文武石) 두 쌍이 마주보고 서 있다. 문무석은 모두 1미터 내외 크기로 능에 가까운 것이 보다 작고, 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공수(拱手)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옆의 것은 키가 좀더 크고, 손에는 홀(笏)을 쥐고 서있다. 장명등은 하대(下臺) 받침 위에 4각으로 된 간석(竿石)과 화사석(火舍石), 8각으로 된 옥개석(屋蓋石)이 올려져 있으며, 화창(火窓)은 두 개이다. 석호 옆에는 8각의 화사석이 있는데, 이것이 원래 장명등의 화사석이 아닌가 추측된다. 석물의 양식과 수법은 다른 고려 왕릉의 것과 같이 대체로 소박하나 왜소한 느낌을 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