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의 난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9.05.26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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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헌창의 난은 신라사 전개 과정에 중요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한 사건이다. 대개 신라 하대의 정치과정을 다루면서 극히 부분적으로만 취급되었을 따름이다. 때문에 김헌창의 난을 선택하여 그 내용에 깊이 알고자 리포트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진골귀족이었던 김헌창은 785년 왕 계승 서열 1위였던 그의 아버지 김주원(명주군왕)이 왕이 되지 못하고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신라 38대 왕, 원성왕)이 왕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웅천주를 비롯한 5주 3소경을 기반으로 하여 14년(822) 3월에 반란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정하여 신라 왕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지향했다. 이에 무진주·완산주·청주·사벌주와 국원소경·서원소경·금관소경이 이에 호응하였고 신라의 9주 5소경 가운데 4주 3소경이 김헌창의 세력권으로 들어갈 만큼 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김헌창의 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는 사료는 다음과 같다.
3월에 웅천주 도독 헌창(憲昌)은 그 아버지 주원(周元)이 앞서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배반하여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참고 자료
박용국, 「新羅 憲德王代 金憲昌의 亂과 晉州地域」,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005
이상훈, 「김헌창의 난과 신라군의 대응」, 육군군사연구소, 2014 (9-33p)
주보돈, 「新羅 下代 金憲昌의 亂과 그 性格」, 한국고대사학회, 2008
KBS1 <역사저널 그날> 106회 “김헌창, 반란 혹은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