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 최초 등록일
- 2014.12.11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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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혁명 프랑스와 유럽, 1792년 전쟁
3. 나폴레옹 제국 이전 나폴레옹 전쟁의 전개과정
4. 나폴레옹 제국 이후 나폴레옹 전쟁의 전개과정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792년 4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전쟁은 중세와 근대 질서의 충돌로 야기된 사건이었다. 1618년~1648년 30년 전쟁을 마무리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유럽 국제사회에서는 중세 질서가 종식 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때부터 근대적인 요소들이 등장해 유럽 외교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으나, 이에 못지않게 여러 중세적인 요소들이 그대로 존속해 근대적인 질서와 공존하면서 충돌하였다. 1792년의 전쟁은 이런 충돌로 인한 최후의 폭력적인 표현이었다.
1792년의 전쟁은 물론 인민 주권을 제창한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촉발되었다. 공화정과 군제제의 대립은 국제정치의 명분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혁명 프랑스는 1792년의 전쟁에서 머물지 않았다. 중세 질서를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출발한 전쟁은 유럽 국제정치 질서 전체를 와해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나폴레옹 전쟁’이다.
2. 혁명 프랑스와 유럽, 1792년 전쟁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이 유럽 열강에 대한 위협으로 곧 연결되지는 않았다. 혁명 프랑스가 외교의 새로운 형식을 표방하고 국제정치의 기존 규범을 변혁시키려고 하자 유럽 열강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외교관들은 공화정과 국민을 대표한다고 자처하였다.
혁명 프랑스의 이런 새로운 국제정치 태도로 인해 나타난 최초의 국제 문제가 바로 알자스-로렌 문제였다. 혁명 프랑스가 주장하는 국민주권과 민족자결 원칙이 만일 현실 정치세계에 적용된다면 유럽의 모든 국제정치 질서는 크게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자스 지방의 성직 군주들은 프랑스의 이런 이론적인 입장이 신성로마제국의 모든 질서 자체에 관계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자스-로렌과 비슷한 사건이 아비뇽 지방에서도 일어났다. 아비뇽은 프랑스 영토가 아니었고 교황이 직접 통치하는 지역이었는데, 1790년 6월 이 지역에서 교황의 행정청을 축출하고 프랑스에 합병해 줄 것을 국민입헌의회에 요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던 콩타 브내생 지방도 같은 요청을 하였다. 1791년 9월 프랑스 의회는 결국 두 지역의 병합을 가결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