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안창호는 독립운동가인가, 실력양성론자인가?
- 최초 등록일
- 2003.06.14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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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창호를 실력양성론자 측면과 독립운동가적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해보았습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한말 보호국 치하에서의 국권회복운동은 크게 무장투쟁 노선과 실력양성운동 노선을 각각 채택한 의병전쟁과 자강운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강운동이란 한마디로 ‘한국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경제적․문화적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하여 장차 국권회복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자강운동이 크게 대두하게 된 데에는 당시 지식층들 간에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었던 사회진화론의 영향과 1890년대 이후 점차 폭넓게 확산되어 가고 있던 개화자강론의 영향, 그리고 1905년 일제의 한국 ‘보호국화’라는 정치․사상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산 안창호 (島山 安昌浩)는 대한제국 멸망 직전 몇 년 동안 개화․자강운동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드러내면서 자본주의 이식 발전을 역설하였고, 특히 열변으로 민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미국 유학생활 중에 직접 눈으로 확인한 미국 자본주의 발전과 제국주의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권이 되어 거대한 생산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제국주의 정책을 신의 소명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기둥은 유길준을 들 수 있다. 안창호는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읽고 그를 숭앙하게 되었고, 평생 동안 유길준을 존경해 마지 않았다.
참고 자료
1. 서중석 "한국근현대의 민족문제연구", 지식산업사, 1989
2.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 연구", 역사비평사
3. 주요한, "안도산 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