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과 붕당정치에 대한 재해석
- 최초 등록일
- 2013.06.20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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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선조조의 당쟁
2)인조조의 당쟁
3)현종조의 당쟁
4)숙종조의 당쟁
3.결론
4.참고자료
본문내용
서론
길을 가는 한국사람들을 잡고 조선후기의 정치하면 떠오르는 묻는 다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백중에 팔십은 붕당정치, 당쟁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랬었고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쟁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다가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당쟁이라는 용어가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이태진 선생의 붕당정치론이 나오기 전에는 당쟁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이었는데, 이 단어에 사적대립이 각인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일제감정기 시절, 조선이 식민화된 계기를 찾던 가운데 권력에 취해있던 훈구파와는 반대로 성리학을 무기로 어지러웠던 후기사회를 다시 재정립했던 사림이라는 세력이 초심을 잃고 권력을 위한 자리다툼을 일삼았다는 당쟁은 그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이런 당쟁론과 당파성론은 민족성의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런 당쟁이라는 용어에 논의를 제기한 것이 1970년대의 이태진 선생이었고, 붕당정치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 중 략 >
당쟁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들이 얼마나 표면적인 것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형태도 붕당정치를 생각나게 했는데, 지금의 정치도 완벽하지 못한데 하물며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를 완벽하게 도덕적이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반성은 필요하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의 대부분을 과거의 반성을 통해 더나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부정적인 면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붕당정치의 과정에서 분명 여러 부딪힘도 있었고 마찰도 많았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정치를 하는데 항상 한 목소리만 낸다는 것 자체는 매우 는 일이다. 그것은 죽어있는 정치다. 개인적으로 왕이 있던 시기에 절대적인 누군가가 있던 시기에 이런 붕당정치가 있었다는 것, 어떤 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붕당정치의 과정에서의 당쟁은 살아있는 정치라는 점의 반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아름다운 날 2007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2> 아름다운 날 2007
이태진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