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정치,경제,사회,문화
- 최초 등록일
- 2014.07.07
- 최종 저작일
- 2013.1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북대 사학과
한국근대사 리포트입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내용을 다룹니다.
목차
1.조선후기 산업발전과 사회·경제체제
2.당쟁과 조선후기 정치
3.조선후기 실학과 문화발달
본문내용
조선 후기에는 산업이 발전하고 유통경제가 성장한다. 우선 농업 생산의 변화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조선 전기의 벼농사는 볍씨를 뿌린 땅에서 그대로 키우는 직파법(直播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지주층의 토지 겸병과 지주제의 확대에 따라 그 소유지가 축소당한 일반 농민들은 농법의 개량을 통해서 그 활로를 개척하고자 하였다. 이앙법으로 그 생산량을 늘린 것인데, 이는 수리 시설의 확충으로 가능한 변화였다. 또한 퇴비와 분뇨, 석회 등 시비법(施肥法)의 개발과 농기구의 개량과 더불어 일부 농민들은 논농사보다 인삼, 고추, 담배 등 상품 경작에 주력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농업기술의 발달과 상업적 농업의 진전은 토지경영에도 변화를 가져와 종래의 특권적 관료·양반 지주에 대항해 비특권적 지주가 출현하게 되었다. 지주제의 변동은 지주권의 약화와 전호권(佃戶權)의 성장을 수반하였고 지대 수취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중 략>
이것은 중농학파와 대조적으로 18세기 후반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자란 노론 집권층의 젊은이들이 내세운 것이었다. 그들도 실학의 일파로 청의 선진문물을 수용해 상공업을 부흥시켜 조선사회를 부강하게 하고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청을 야만시하는 북벌론의 허구를 깨닫고 북학론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학파, 이용후생학파, 중상학파로 불린다. 이 이론의 대표자로 박지원이 있는데 그는 직접 북경에 다녀와서 청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열하일기>를 집필했다. 그의 제자인 박제가도 <북학의>를 저술했다. 청의 고증학을 수용해 실사구시의 학문 정신으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추구했다. 이러한 실학의 의미는 실학자들의 근대 지향적 성격이 훗날 개화사상으로 연결되었다는데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