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경질무문토기의 정의
Ⅲ. 경질무문토기의 기원
Ⅳ. 경질무문토기 단순기의 설정
Ⅴ. 경질무문토기 출토 유적
Ⅵ. 타날문토기
Ⅶ.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고학에서 편년(編年)을 설정하는 것은 고고학자들에게 하나의 골칫거리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편년을 내리는 것은 과거 문화를 밝히는 기본적인 뼈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고학 연구에서 편년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년을 내리는데 는 여러 가지 이론적 방법이 있고, 주거지의 평면형태의 변화 노지의 위치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서 편년이 내려지는데 토기가 가장 많이 출토되기도 하고 제작 방법, 기형, 문양 등 의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기에 많은 학자들이 토기를 이용해서 편년을 내린다.
<중 략>
이 문화의 출현배경으로 지목되어온 고조선과 연의 충돌이 일어난 만반한(滿潘汗)을 청천강이 아닌 천산산맥 일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산산맥 이동부터 청천강 이북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철기를 공반한 타날문토기 문화는 그 이서 요녕(遼寧)지방의 그것과는 출현계기를 달리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이다.
천산산맥 이동의 철기문화를 기원전 2세기 초 위만세력의 고조선 서변지역으로의 이동으로 볼 수 있다.9) 세죽리의 철기문화는 강철 제품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강철 제강기술은 한 대의 철기 문화이므로 타날문토기가 출현하는 시점은 위만세력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한 기원전 2세기 초 무렵의 한 대였다.
이상 살펴본 바에 의하면 타날문토기와 경질무문토기는 한반도에 출현하는 시기가 틀리다. 따라서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 토기가 공반하는 이유는 경질무문토기의 단순기가 지나면서 타날문토기가 수용되면서 이다.
참고 자료
김양옥, 1994, 「韓國 鐵器時代 土器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박사논문
김원용, 1989, 『한국고고학개설』, 일지사
노혁진, 2004, 「중도식토기의 유래에 대한 일고」, 『호남고고학보』 19집
박순발 이현혜, 1996, 「한성백제 기층문화의 성격 - 중도유형문화의 역사적 성격을 중심으 -」 , 『백제연구』 제26집
박순발, 1989, 「한강유역 백제토기의 계통과 몽촌토성의 성격에 대한 일고찰 ? 몽촌토성출 토품을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박순발, 1989, 「한강유역 원삼국시대의 토기의 양상과 변천」, 『한국고고학보』 제23집
박순발, 1998, 「백제 국가의 형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박순발, 2003, 「粘土帶土器文化의 定着 過程」,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제49회 추계 학술 발표회 요지문』, 한국대학박물관협회
박순발, 2006, 『백제토기 탐구』, 주류성
박중국, 2010, 「呂자형 주거지를 통해 본 중도문화의 지역성」, 한신대학교 석사논문
이일용, 2009, 「강원지방의 원삼국문화 연구 ?영동·영서지방의 고고자료의 비교를 중심으 로-」, 강원대학교 석사논문
최병현, 1998, 「원삼국토기의 계통과 성격」, 『한국고고학보』 제38집
최성락, 1988, 「原三國期 土器의 變遷과 問題點」, 『영남고고학보』 제 5호
한국고고학회, 2007, 『한국 고고학 강의』, (주)사회평론
한지선, 2003, 「土器를 통해서 본 百濟 古代國家 形成過程 硏究」, 중앙대학교 석사논문
한지선, 2007, 「백제토기 성립기(成立期) 양상에 대한 재검토」, 『백제연구』 제4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