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로교 분열과정
- 최초 등록일
- 2012.03.2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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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 이전까지 장로교는 일부 자치교회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단일교회를 유지해왔다. 일본식민지 시기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흡수, 통합으로 정체성이 위협을 받기는 하였으나 분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방이후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분열이 나타난다.
고신파 분열부터 시작된 한국 장로교 분열의 과정을 살피고 그 안에 내제한 분열의 매커니즘을 살핀다.
목차
1. 한국장로교의 분열
1.1 고려파 교파 분립
1.2 기장파 교단분립
1.3 통합파와 합동파 분열
2. 한국장로교 분열 평가
본문내용
김재준 교수는 이들의 요구에 응하여 진술서를 썼다. 그는 ‘신구약 성서는 신언(神言)이니 신앙과 본문에 대해 정확 무오한 법칙이니라’라는 장로교 신조1항이 자신의 신앙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지만 성경의 목적은 연대표나 과학적 사실 혹은 인종학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이해했다. 성경의 정확 무오함은 과학이나 역사나 지리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과 본분’이라는 종교적 구원과 행위의 영역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요점이었다.
총회의 8인 심사위원들은 김재준 교수의 진술서와 성명서의 내용을 검토하고 1년여간의 조사 후에 김재준 교수의 신학이 정통적 신앙에서 벗어났다는 의심은 했지만 “신앙은 보수, 신학은 자유”라는 그의 논리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김재준 교수가 말하는 무오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오설이 아니라고 총회에 보고하였다. 신학적 갈등은 조선신학교의 설립목표와 총회8인의 심사위원의 검토에서 드러나듯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박형룡은 문건을 분석한 후, 김재준 교수의 진술서에 나타난 성서관은 파괴적 고등비평의 성서관이요, 교리문제에 대한 그의 변명은 신(新) 신학의 교리관이라고 단언하였다.
박형룡은 신학적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보고에서 지속적으로 김재준 목사를 필두로 한 조신측을 비판한 이유를 신학적 문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당시 이북 신도대표회는 총회 내 보수 세력과 손잡고 평양신학교 재생을 목표로 장로교 신학교 설립운동을 전개하는 상황 이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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