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1.12.23
- 최종 저작일
-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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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18세기 실학을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의 생와 그의 대표작인 <열하일기>를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한 글.
목차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1. 박지원의 생애
2. 열하일기의 구성과 내용
3. 북학의 이용후생(利用厚生)
4. 문학의 법고창신(法古創新)
본문내용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18세기 후반 당대 최고의 비판적인 작가일 뿐만 아니라 북학사상가였다. 서울의 서소문 밖 반송방(盤松防) 야동(冶洞)에서 아버지 박사유와 어머니 함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할아버지 박필균의 슬하에서 외롭게 자랐다. 16세 때 유안재 이보천의 집안에 장가든 뒤, 유안재에게서《맹자》를 배우고, 이양천에게서 사마천의《사기》를 비롯하여 3년 남짓한 사이에 경사(經史) 및 백가서(百家書)를 두루 통달하고 천문, 지리, 경세요무(經世要務)를 강구하였다.
1765년(영조41) 처음으로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후로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에 백탑(白塔) 근처에 이사하게 되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서상수 등과 이웃하면서 학문적으로 깊이 교유하였다. 특히 30세 때에는 1765년에 연행(燕行)하고 돌아온 홍대용과 교유하면서 청나라의 실정과 국제정세 그리고 지구자전설을 비롯한 서영학문에 접함으로써 마침내 북학에 뜻을 두었다.
1777년(정조1)에 세도가 홍국영에 의해 벽파(僻派)인 홍낙성의 일파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껴 황해도 금천에 있는 연암협으로 피신하였다. 1780년(정조4)에 족형(族兄)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 이용하여 후생할 수 있는 시책만을 모은 《열하일기》를 썼다. 《열하일기》에서 보이는 그의 이용후생론은 연행 이전부터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 그의 젊은 제자들과 토론한 것을 연행을 통해 이를 확신하고 체계화한 것이다.
박지원의 연행은 그가 당시 집권층인 서인 노론계에 속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그의 학맥은 노론에서도 인물성동론을 주장하는 낙론(洛論)계열에 속한다. 그와 동종인 박윤원은 홍대용과 함께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에게서 동문수학한 처지로 박지원과는 친근한 사이였고, 박지원의 숙부 박사근은 낙론의 거두였던 여호 박필주의 양자였다.
참고 자료
박지원 지음, 고미숙 옮김, 《열하일기》, 그린비. 2008.
한국철학사연구회 지음,《한국 실학사상사》, 다운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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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편집,《권장도서 해제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황광욱, 정성식, 임선영 저,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동녘,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