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전기 사상사의 경향
- 최초 등록일
- 2010.11.15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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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전기의 사상사를 불교와 유교로 나누어 정리한 발표자료입니다.
김두진,『고려시대 사상사 산책』의 요약본이기도 합니다.
목차
1. 머리말
2. 현종대 이후 불교계의 경향
1) 화엄학파의 계승
2) 균여와 의천파의 대립
3) 법상종의 대두
4) 거사불교(居士佛敎)의 유행
5) 선종계의 움직임
3. 고려초기 유교적 정치사상의 성립
1) 유교적 정치이념의 정착
2) 성종대의 유교적 정치사상
4. 맺음말
<참 고 문 헌>
참고자료
본문내용
1. 머리말
고려중기 현종대로 들어서면서 불교계는 선종 세력이 약화되고 교종의 세력이 강성하여 화엄종과 법상종이 양립하게 된다. 이 두 종파는 왕실과 귀족세력에 연결되어 대립하면서, 각기 다른 불교계의 교파와 사상을 나누고 절충하며 공존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신라 말부터 수용되기 시작한 유교적 정치이념이 고려 초기에 들어서 통치이념으로 정립되기 시작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고려 전기의 사상들의 경향을 불교계와 선종대의 유교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현종대 이후 불교계의 경향
1) 화엄학파의 계승
고려 초의 화엄종의 여러 교단은 일단 균여에 의해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 종단 내 대립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균여가 귀법사에 주지로 있을 때 같은 절에 거주하는 정수와 대립하였는데, 균여가 토착신앙을 강하게 표방하였다면 정수는 순수교리적 신앙을 내 세웠다. 또한 광종대 화엄종에 그와 상당히 성격을 달리하는 탄문이 있었다. 그의 교학은 화엄학에 기반을 두었지만 다른 경전에도 폭넓은 관심을 보인 점에서 원효의 사상에 접근하여 있어, 이는 뒷날 의천의 화엄교학과 비슷한 사상경향을 가졌다. 하지만 탄문의 법맥이 의천에게로 이어지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균여의 계승자로는 창운이 있었다. 창운은 개경중심의 고려문화가 난숙기로 접어든 시기에 살면서, 토착적인 신이(神異)를 강조한 고려초기의 화엄종 사상경향을 계승하였다. 창운과 함께 균여를 흠모하여 그의 전기를 남겨준 혁련정도 이러한 불교경향에 동조하였던 인물이었다.
창운이 활동하는 당시는 의천의 화엄종이 큰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의천은 창운과 구별되는 일문을 이루어 고려 중기에는 의천의 화엄종이 융성하였다. 의천은 문종의 넷째아들로 중국에 들어가 진수정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경덕국사 난원을 사승(師僧)으로 두고 창운․이기․악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16 : 고려전기의 종교와 사상』, 1981
김두진,『고려시대 사상사 산책』, 국민대학교 출판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