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불교결사운동
- 최초 등록일
- 2010.09.13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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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후기 불교결사운동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머리말
1. 고려후기 신앙결사의 성립
1) 결사운동의 배경
2) 신앙결사의 의미와 그 양상
2. 신앙결사의 유행
1) 지눌(知訥)과 수선사의 결사운동
2) 요세(了世)와 백련사의 결사운동
3. 결사운동의 쇠퇴와 역사적 의의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고려 태조 왕건은 선종이라는 새로운 지방 불교세력에 힘입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지만, 새 왕조의 왕이 되면서 오히려 이 사조는 새로 개편되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교종과 선종의 논리를 서로 절충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현종 이후, 문벌귀족 체제가 확립되어 가면서 화엄, 법상종 중심의 교종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한다. 이들 교단은 귀족가 자제들에 의해 그 법통이 이어짐으로써,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궁중에서는 원찰의 성격을 띤 사찰을 세우고, 일반 부녀자나 신도들은 자신의 명리만을 위한 기복적 성격의 불교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반면, 중앙 귀족층과 달리 지방 사회의 향리계층이나 대다수의 백성들은 특정 종파에 구애됨이 없이 독자적인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사원을 중심으로 조탑, 주종에 참가하여 전통신앙과 정토신앙을 유지해 나갔다.
의천이 출현하여 문벌 귀족과 결탁한 불교계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촉구되었고, 불교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그는 교외별전을 내세우는 선종에 대하여 비판적이면서도, 교와 선을 병행해야만 수행의 정로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의천의 교선 통합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화엄의 입장에서 선을 강제적으로 포섭하려는 태도를 취했고, 이로 인해 선종은 더욱 위축됨을 면치 못하였다. 의천의 개혁 방안은 본질적으로 문벌 귀족과 동일한 기반 위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와 불교계에 대한 실질적인 개혁은 이뤄질 수 없었고, 특히 기층 민중들의 신앙생활에 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12세기 후반부터 고려사회는 커다란 사회변동들을 겪으면서 또 하나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불교계 내부의 분열대립과 타락에 대한 개혁 의도를 가진 ‘결사운동(結社運動)’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시 대내외적인 사회적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고려 후기 사회변동과 더불어 나타난 불교계의 동향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당시 유행하였던 결사운동 성립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대표 사상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각 결사운동이 갖고 있는 사상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고려 후기의 불교결사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살펴봄으로써 당시 고려사회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고익진, 『원묘국사 요세의 백련결사』,
김두진, 『고려시대 사상사 산책』, 국민대학교 출판부, 2009.
김방룡, 『보조지눌의 사상과 영향』,보고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