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교정책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0.01.18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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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개과정과 분석
북한의 외교정책 pp.172~
50년대 북중관계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북한의 대소관계와 거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사상 확립을 명분으로 김일성이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북한 내 친중세력인 연안파를 숙청함으로써 한때는 북중관계가 껄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개최된 제 20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 노선과 스탈린 격하운동 제창으로 북한은 소련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한편 중국의 대서방 강경노선과 경제정책을 지지하고 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과 중국은 6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1961년 7월 11일 북한과 중국은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북한은 중국과 이 조약을 체결하기 5일 전인 1961년 7월 6일,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해 소련과도 상호방위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북한과 소련간에 체결된 조약이 10년 경과 후 매 5년마다 갱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과 중국간에 체결된 조약은 조약체결 당사국들이 변경이나 종식에 대해 합의하지 않을 경우 영원히 지속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던 양국관계는 65년 베트남에 대해 중국이 소련보다 원조와 개입을 적극적으로 회피함으로 북한이 불만을 나타내게 되었다. 또한 중국이 소련과 관계개선을 추구해서 북한은 중국을 비판했다. 이러한 양국 간의 갈등은 때마침 중국에서 발생한 극좌파들이 김일성을 비판한 문화혁명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정리되는 1969년 말부터는 중국과 북한 지배층 사이에서 친선을 도모했고, 특히 1970년 4월 주은래 총리의 평양방문을 기점으로 양국관계는 다시 밀착되었다.
목차
5. 북한의 대 동맹국 외교정책
6. 북한의 대 서방권 외교정책
1) 대미정책
2) 대일정책
7. 북한의 대남 외교정책
Ⅲ. 결 론
본문내용
5. 북한의 대 동맹국 외교정책
북한의 대중 정책
-목표 유영옥, ‘국제사회와 북한`, pp.427~30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사회주의국가 중 북한이 의지할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북한은 당면한 경제난을 해소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상태이며 중국역시 동북아시아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아울러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한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1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
2 식량, 원유 등 북한은 현재 전략물자의 공급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3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효과적인 외교적 지지, 지원을 기대한다.
-전개과정과 분석
북한의 외교정책 pp.172~
50년대 북중관계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북한의 대소관계와 거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사상 확립을 명분으로 김일성이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북한 내 친중세력인 연안파를 숙청함으로써 한때는 북중관계가 껄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개최된 제 20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 노선과 스탈린 격하운동 제창으로 북한은 소련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한편 중국의 대서방 강경노선과 경제정책을 지지하고 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과 중국은 6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1961년 7월 11일 북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