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사] 베트남의 독립운동
- 최초 등록일
- 2001.11.29
- 최종 저작일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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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프랑스 식민주의
(1)프랑스의 베트남지배
(2)식민행정과 통치
2)개명파 문신의 민족운동
(1) 문신기의의 전개와 반불투쟁
(2)개명파 문신의 동유운동과 좌절
(3) 베트남광복회와 민족운동
(4) 개명파 민족운동의 한계성
3) 민족주의의 쇠퇴와 공산주의의 대두
(1)국민당의 쇠퇴
(2)공산주의 세력의 대두
(3) 베트남의 독립선언
결론
본문내용
서론
베트남의 민족운동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3지역(안남·통킹·코친 차이나)의 통일이라는 2중 과제를 안고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먼저 민족운동의 배경으로서 프랑스 식민주의의 성격을 고찰한 다음, 근대민족주의의 선구인 문신기의(文紳起義)의 시말(始末)을 개관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민족운동의 지도 세력과 그 패퇴 그리고 공산주의 세력의 대두와 그들이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본론
1)프랑스 식민주의
(1)프랑스의 베트남지배
15세기 경 동양에의 항로가 발견된 이래, 유럽세력의 동점(東漸)에 있어서 그 선봉이 된 것은 종교인들이었다. 그 중 베트남에서는 최초의 프랑스인 선교사 못뜨(Gedrges de La Motte) 신부(1585)를 비롯하여 제수이뜨(Jesuites)파 승려들이 계속 내월(來越)하여 포교 및 문화의 중개자로서 활약하였다. 이후 계속 된 선교사의 파견으로 베트남에 친불(親佛)카톨릭 교도의 기반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베트남과의 관계가 실제상 본격화된 것은 18세기 말경 삐뇨(Pigneau de Behaine)신부 이후의 일이다. 삐뇨신부가 베트남에 올 무렵 베트남은 역사상 최대규모의 농민의 난인 떠이썬(西山)운동으로 인하여 여러 세력들이 대립되어 전국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 중 레조(黎朝)이후 남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