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생태신학적 이해
- 최초 등록일
- 2000.09.08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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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작하는 말
1)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에 대한 최근의 신학적 관심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위상
3)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창 1:26, 28)
4) 땅을 정복하라(창 1:28)
5)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책임(창 2:15)
맺는 말
본문내용
14년 전 필자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신학춘추 기자가 교수 칼럼에 느낀 바 소감을 쓰라는 요청에 십여 년간 해외에 있었던 필자로서 느낀 첫 반응은 열악한 우리 자연환경에 관한 것이었다(1983/11/25).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과 같이 십여 년이 지나서 고국에 와 보니 서울의 거리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하였다. 한강 건너 강남의 거리는 구미의 대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변하고 발전한 모습들이 눈에 뜨인다.
출퇴근 시간에는 자동차가 홍수처럼 밀리니 시카고나 뉴욕, 파리나 카이로와 같은 세계 대도시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듣던 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 첫날부터 느끼는 것은 서울 하늘의 맑은 공기를 맛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은 늘 안개 낀 날씨처럼 부옇게 흐리고 탁한 공기에 시내 중심가에서는 눈의 아픔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십여년 전에 비해 서울공기가 탁해진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수돗물도 끓이지 않고는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푸른 한강 물은 어디로 갔고 흐린 물만이 눈에 뜨인다. 잘살게 된 만큼, 다시 말해 과학기술과 문명의 혜택으로 편하게 살게 된 만큼 우리 자연환경이 파괴되었고 오염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데 대한 자연의 반발로 각종 오염이 상승되고 미지의 병균이 급증되고 있으며 핵의 위협이라는 긴장감속에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자들은 생존의 윤리를 최고의 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20 세기 후반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살 곳은 아니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뒤의 후손들도 살아야만 될 장소이고 보면 우리들만이 자연을 독점하고 우리들만을 위해 사용할 권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세계 에너지의 반에 가까운 량을 소비하고 있는 것과 같이 20 세기 후반기의 인류가 지구 에너지의 상당량을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용할 권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제한된 에너지의 해결책으로 대체 에너지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나 활용성에 비해 비용과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미래의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은 이런 오늘의 현실을 종말론적으로만 강조할 뿐만이 아니라 문제성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대책이 요청된다고 본다. 종말론적 이해와 함께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비자연화를 극복하는 일이 요구된다.
자연이 인간의 파괴와 이용의 대상이란 견해는 지난시대의 이해이다. 자연이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만이 우위라는 사고는 지난시대의 사고이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보다는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되었다는 만민평등뿐만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의 균형과 조화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 근동세계에서는 임금과같은 특수한 사람만이 신의 형상대로 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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