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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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ㆍ수록지정보 : 동국사학 / 57권
ㆍ저자명 : 서인범
ㆍ저자명 : 서인범
목차
Ⅰ. 머리말Ⅱ. ⌈명실록⌋ 찬수 과정
1. 纂修官의 임명
2. 사료 수집과 초고 작성
3. 上進
Ⅲ. ⌈명실록⌋ 御覽本의 출현
1. 小型 御覽本의 제작
2. 大本-內府 舊本의 복제본
Ⅳ. ⌈明實錄⌋의 收藏處, 內府와 皇史宬
1. 명조의 실록 수장처, 皇史宬
2. ⌈조선왕조실록⌋ 수장처, 五臺山史庫
Ⅴ. ⌈명실록⌋의 조선 유입
Ⅵ. 맺음말
한국어 초록
중국 역사상에 있어 實錄은 황제 재위 기간 중에 벌어진 사건 등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사료집이다. 明朝도 이전 왕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실록
을 편찬하였다. 전임 황제가 죽으면 후임 황제가 祖先의 옛 제도나 纂修
사례를 본받아 각 아문에 보관하고 있던 사료나 지방의 문헌 등을 수집하
여 편찬하였다. 그 결과 ?太祖實錄?부터 ?熹宗實錄?까지 13王朝의 역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명실록?은 조선에도 유입되었다. 선조 29년(1829)에 북경에 들어
갔던 使行이 이듬해 귀국할 때 구입해 왔다. 그런데 현재 ?명실록?의 행방
은 묘연하다. 일본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일제시대 말 昌德宮 奉謨堂으로
이전하여 소장되었다고 하는 부분까지는 알려졌으나 그 이후 어느 곳에
소장되어 있는지, 없어져 버렸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한국역
사정보시스템에 ?명실록?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1933년에 촬영한 ?명실
록?의 유리필름자료(국사편찬위원회) 몇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명실록 수장처는 皇史宬으로 환관 12監 중 司禮監이 관할하였다. 서적
의 습기를 막거나 좀 방지를 위해 매년 6월에 실록을 햇볕에 널어 말렸다.
반면 조선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重印이 완간되자 강원도 평창 월정사
와 상원사 중간 지점인 오대산서고에 실록을 봉인하였다.
오대산 수호사찰은 월정사로, 오대사사고는 2명의 參奉이 관리 책임을
맡았다. 실록의 보존을 위해 바람을 통하게 하여 습기를 제거하고 해충을 제거하는 曝? 작업을 애초에는 3년에 1회 실시하였다. 효종 이후는 2년에
1회, 정조 말 이후는 3년 1회 실시되었다. 시기는 우기를 피해 날씨가 좋은
가을의 맑은 날을 길일로 선택해 행하였는데 오대산의 경우는 음력 3~5
월과 8~10월 사이에 행해졌다.
이처럼 명조가 정치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권력을 쥐고 있던 환관들이
실록을 관할하고 있었던 데 반해, 조선은 오대산서고를 월정사 住持나 僧
軍에게 관리하게 한 점에 있어서도 양국 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영어 초록
In the history of China, annals were a manuscript that was kept torecord chronologically the daily accounts and national affairs of
emperors during reign. Ming dynasty also compiled its annals according
to the tradition of previous empires. When emperors died, successors
usually made a collection of departmental materials and local literatures
of the predecessors' time and published them following the
conventional examples of their ancestral rulers. As a result, the histories
of thirteen emperors were fully written in the annals of Taejo to
Heejong.
The annals of Ming dynasty were also brought to Chosun. In the
29th year of Sunjo reign, an envoy to Peking bought the annals of Ming
dynasty and returned to chosun with the annals the following year. Yet
the location of ‘The Annals of Ming Dynasty’ is unknown at the present
time. According to the research of a Japanese scholar, the annals were
transferred to Bongmodang of the Changdok palace and preserved
there in the late time of Japanese Occupation, after the Occupations,
their whereabouts was missing. All one could confirm the present
moment are only few of film materials of ‘The Annals of Ming Dyansty’, pictured in 1933. To day, the only way to obtain the information of
the films is by logging in the Korean History On-Line System and
putting in the search te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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