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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독서의 기술 - 고명환 저 독후감
    독서의 기술 - 고명환 저 독후감
    독후감독서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도서 [“독서의 기술” - 고명환, 라곰]을 읽고......- 목차 -Ⅰ.들어가는 말1. 저자소개 및 책 소개Ⅱ. 본문1. 책을 읽게 된 동기2. 책의 줄거리와 독서의 기술Ⅲ. 결론3. 책을 읽고 느낀 점이나 교훈Ⅰ. 들어가는 말우리는 시간이 나면 독서를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간접경험을 통해 세상을 넓게 이해할 수 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 그래서 취미로 독서를 하면 좋다. 도움이 되는 시간투자이며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독서를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책은 가까이 하면 좋은 취미가 된다.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나 경제서적을 읽을 수 있다. 독서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할 수 있다. 독서는 적극적인 지식추구활동이다.■ 저자소개 및 책소개저자는 고명환으로 개그맨이자 자기계발서 작가이다. 이미 여려 권의 책을 낸 경험이 있다. 1년마다 꾸준히 책을 쓰고 있다. 그가 쓰는 내용은 생존을 위한 독서이다. 독서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자기계발은 생각을 트이게 만들고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꾸준히 해야 한다. 자기관리에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명환의 “독서의 기술”은 자기계발서로 최근 나온 신간이다. 새롭게 정리한 만큼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고명환은 욕지도에서 책을 쓴다. 그리고 독서를 20년 동안 해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내용의 책이 나올 수 있었다.출처 : 네이버출처 : 네이버Ⅱ. 본문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자기계발과 경제관념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집필했고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된다. 20대부터 중년까지 읽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자기계발을 통한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다. 반면, 중년에게는 경제지식과 견문을 넓혀주어 도움이 된다. 책읽기를 통해 우리는 한층 더 고차원의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뇌를 훈련하고 단련시켜 장시간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저자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매일 책을 읽는다. 그가 읽는 도서의 종류는 다양하다. 문학, 철학, 역사, 경제, 과학도서까지 섭렵한다. 요즘은 문학에 빠져서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유튜브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으로 메밀국수집을 운영하며 노하우도 알려준다. 그는 교통사고의 경험으로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이후로 깨달음을 얻어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독서를 널리 전파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책을 읽어서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자기계발은 사회초년생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할 수 있다. 자기관리는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다. 나이에 따라 다가오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특히 20대부터 자기계발서를 다양하게 읽으면 사회로 나아가는 데 좋은 간접경험이 된다. 그리고 중년은 힘든 시기에 경제관념을 적립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자기계발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실수를 줄여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자신감을 얻으며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이 책은 단숨에 읽었다. 물론 조금씩 중간에 쉬기도 했다. 일단 쉬운 문체로 읽기 좋은 자기계발서이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일상과 가까이에 있어서 읽기 편하다. 은유보다는 정확한 문장을 전달한다. 직관적인 문장이라 이해하기 쉽다. 저자는 독서의 방법을 알려준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매일 10쪽 독서를 제안한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에는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 독서내공이 느껴지는 철학적인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문학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과 세상사는 이치를 알기위해서이다. 수많은 독서를 통해 중요성은 익히 들어왔다. 새삼 다시 깨닫는다. 저자의 책에 대한 지식수준이 느껴지며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장점이다. 독서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독서의 기술로 집약했다. 이 책의 기술대로 독서의 도움을 받아도 되고 자기의 독서방식을 개발해도 된다.저자가 알려주는 독서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루에 10쪽 읽기, 여백에 요약하여 메모하기, 여러 권의 책 돌아가면서 읽기, 문학?철학?역사?경제?과학도서 읽기, 어려운 책으로 힘듦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은 끝까지 읽지 말고 넘기기 등이다. 책을 통해서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읽기 힘든 두꺼운 책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책에 도전하면서 뇌를 단련시킬 수 있다.독서는 훈련이다. 그래서 하루에 10쪽만 읽기에 도전하거나 여러 권을 번갈이 읽는다. 그러면 뇌의 근육이 단련된다. 그리고 여러 분야를 읽으면서 균형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은 가볍게 훑어가면서 읽거나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뇌의 자극이 되어 좋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꺼운 책에 도전하면 포기하기 쉽다. 더 이상 독서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고 삶의 무기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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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5 | 6페이지 | 3,500원 | 조회(22)
  • 판매자 표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독 후 감《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장영희 지음(샘터, 2026)―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기적이다 ―살다 보면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가 있다.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그래서 기적은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적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아침에 눈을 뜨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힘들어하면서도 하루를 살아내는 일.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오늘 하루가 이미 기적일지도 모른다.저자의 삶은 평범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늘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에 의지해야 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암과 싸워야 했다. 암이 재발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거듭 겪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려운 과정에서 사랑과 감사,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고통을 이겨 낸 사람의 영웅담보다 고통을 안고도 평범한 하루를 사랑하려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이 더 짙게 배어 있다.책의 제목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의 삶을 가장 잘 압축한 말이다. 그는 투병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 낸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취지로 글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시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눈곱만큼의 기적도 필요 없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평범한 삶을 살고자 소망했지만, 그의 삶에는 연이어 병이 찾아왔다. 한 번의 시련을 견뎌 냈다고 해서 인생이 더 이상 아픔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순서대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나누어 일어나지 않는다. 행복한 날 한가운데 불행이 끼어들기도 하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순간 뜻밖의 기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삶은 계획한 대로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 예기치 않은 순간들을 받아들이며 하나씩 완성해 가는 작품에 가깝다.그의 글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까닭은 아픔을 말하면서도 삶을 무겁게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철학보다 일상의 작은 장면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오래된 편지 한 장, 가족과 친구, 학생들과 나눈 마음,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이 그의 글에서는 삶을 붙잡아 주는 소중한 기억이 된다. 삶의 행복은 멀리 있는 커다란 성공보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내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라는 꼭지 글도 그런 마음을 잘 보여 준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헤아리는 데 익숙하다. 남보다 부족한 것, 이루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다 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고, 가족이 곁에 있을 때는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며, 평범한 하루가 이어질 때는 그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삶이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행복은 어쩌면 삶의 조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같은 하루를 살면서도 부족한 것만 헤아리면 삶은 끝없이 결핍되어 보이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고통 앞에서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은 아니다.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하고, 슬픈데 행복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고통이 삶의 전부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아픔 속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것,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오늘을 바라봐야 한다.「괜찮아」라는 꼭지 글에도 그런 따뜻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실수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거창한 충고가 아닐 때가 많다. “괜찮아.” 그 한마디가 실패로 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시 걸어갈 힘을 준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하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는 자책한다. 남에게는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면서 자신에게는 비난만 한다. 그러나 사람은 완벽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채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살아간다. 어제의 잘못 때문에 오늘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자신에게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진짜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너만이 너다」라는 꼭지 글 역시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있고,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는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비교가 시작되면 자신의 삶은 쉽게 초라해진다. 그러나 세상에 똑같은 삶은 없다. 각자가 살아온 시간도 다르고 견뎌 온 아픔도 다르며, 앞으로 걸어갈 길도 다르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순간 자기만의 삶을 잃어버리기 쉽다.저자의 삶 역시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본다면 부족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이 가진 한계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바라보았다. 장애가 있었지만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글을 썼고, 수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그의 삶이 특별한 것은 장애와 질병을 극복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갔다는 데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삶에서 무엇을 소중하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조금만 더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의 어려움만 지나가면 그때부터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삶은 언젠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던 미래가 찾아왔을 때는 또 다른 걱정과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우리가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오늘뿐이다.그래서 「오늘이라는 가능성」이라는 꼭지 글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거창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고, 미뤄 두었던 일을 바로 시작하고, 지친 사람의 손을 한 번 잡아 주는 것으로도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이 될 수 있다. 인생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거대한 사건보다 이렇게 하루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후감/창작 | 2026.08.25 | 5페이지 | 2,000원 | 조회(22)
  • 판매자 표지 강경수 작가의  - 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 - 를 읽고
    강경수 작가의 - 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 - 를 읽고
    강경수 작가의 『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를 읽고1. 설렘과 호기심으로 넘겨본 첫 장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스웩이 넘칠 거야”라니. 이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한마디 속에는 단순한 유흥을 넘어선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용기이자 자신감이며,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오랫동안 가슴 깊숙이 숨겨두었던 나만의 ‘끼’를 당당히 해방시키는 선언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서 튀지 않고 조용히 묻혀가려 애써왔던 내게는, 단지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어떤 유쾌하고도 강렬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설렘을 가득 품은 채 책장을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2. 억눌린 본능과 세상을 바꾼 다람쥐의 ‘스웩’그림책의 주인공은 작고 귀여운 다람쥐다. 하지만 이 다람쥐는 결코 작지 않은 존재감을 발산한다. 몸집은 조그맣지만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멋짐’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을 춤과 노래, 리듬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본능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람쥐를 둘러싼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변의 밤 동산 동물들은 해가 지면 조용히 숨죽여 쉬기만을 바라고, 다람쥐가 발산하고자 하는 ‘스웩’ 넘치는 열정은 번번이 주변의 시선과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억눌리고 만다.하지만 다람쥐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본능과 재능을 억지로 감추며 남들의 기준에 맞추는 대신, 당당하게 자신의 끼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진심 어린 에너지와 리듬은 주변 동물들에게까지 감염되어, 동산 전체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경이롭고 열정적인 밤을 만들어낸다. 이 간단하면서도 리듬감 넘치는 서사는 내게 너무나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단순히 재미있는 동화를 넘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그 작은 표현 하나가 어떻게 주위의 냉랭한 분위기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깨닫게 해주었다.3. ‘평범함’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었던 유년 시절돌아보면 어릴 적 나는 늘 ‘평범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조용한 압박 속에서 자랐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무 튀지 마라”, “조용히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다”, “말을 아끼고 시키는 것만 잘하는 게 예의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물론 그것은 내가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적응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쌓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원래 존재하던 빛과 열정, 그리고 ‘끼’를 감추고 억누르는 것을 당연한 습관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학급 발표 시간이 오면 늘 시선을 피했고, 연극이나 합창 무대에서도 손을 들기는커녕 언제나 제일 뒷줄 구석 자리를 자처했다. 남들의 시선과 주목을 받는 것이 어색했고, 그 시선에 담긴 평가를 견뎌내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점점 ‘무난함’과 ‘무표정함’을 안전한 방어막으로 삼으며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그러나 나를 숨기면 숨길수록 가슴 한구석은 늘 무언가로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친구들을 배꼽 잡게 웃겨보고 싶다는 마음, 무대에서 목청껏 노래 부르고 싶다는 욕망,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는 소망은 항상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창피를 당하거나, 남들에게 ‘자기 잘난 척하는 아이’로 비쳐 배척당할까 봐 스스로 입을 다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4.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 내 인생의 첫 박수그러다 대학 시절,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되는 뜻밖의 계기를 맞이했다. 친구를 따라 정말 우연히 한 무대 공연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가 없어 무대 뒤에서 소품을 정리하거나 음향을 조절하는 ‘비노출’ 역할만을 고집했다. 남들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 내게 가장 편안한 옷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 공연을 얼마 앞두고 갑작스럽게 한 선배가 개인 사정으로 이탈하면서 내가 아주 작은 단역 배역을 맡아야 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처음 대본을 받아 들었을 때의 두려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긴장해서 울컥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드디어 조명이 밝게 비추는 무대 위로 발을 디뎠다. 조명 때문에 객석은 어두웠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나는 연습했던 몇 마디의 대사와 과장된 몸짓을 마침내 꺼내놓았다. 그 순간, 어두운 객석에서 기대 이상의 큰 웃음과 뜨거운 박수가 와르르 터져 나왔다.그 박수 소리는 순식간에 내 온몸을 감쌌고, 오랫동안 단단하게 나를 매어두었던 억압의 껍질을 단번에 깨부수어 버렸다. 내 안에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울림을 줄 수 있는 빛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빛을 감추지 않고 세상 밖으로 꺼냈을 때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가슴 뜨겁게 외쳤다.“오늘 밤은, 진짜 나로서 스웩이 넘쳤다!”5.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무대를 만드는 법강경수 작가의 그림책은 바로 잊고 있었던 대학 시절의 그 강렬한 전율을 완벽하게 되살려주었다. 그림책 속 다람쥐처럼 나 역시 그동안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 사회가 정해놓은 ‘조용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라는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지워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리듬’과 ‘소리’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 했던 생생한 존재였다. 그 솔직하고도 강렬한 욕망을 ‘스웩’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로 멋지게 풀어낸 작가의 통찰에 깊이 탄복했다. 덕분에 오랫동안 먼지가 쌓여있던 내 속의 자존감과 자기애가 다시금 환하게 깨어날 수 있었다.이 책은 단지 아이들을 웃기기 위한 일회성 유쾌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 깊은 곳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고, 세상 앞에 당당히 드러내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르쳐주는 인생의 기본서와 같다.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산다. 누군가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누군가는 화려하게 외모를 가꾸며, 누군가는 해외여행과 근사한 파티로 가득 찬 매일을 공유한다. 타인의 일상 중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모아놓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나는 자주 비참해지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고 보잘것없을까?’, ‘내 인생은 왜 이리 단조롭고 밋밋하기만 할까?’ 하는 자괴감과 비교의 늪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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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19)
  • 판매자 표지 손석춘의 - 미래 세대를 위한 우주 시대 이야기 - 를 읽고
    손석춘의 - 미래 세대를 위한 우주 시대 이야기 - 를 읽고
    손석춘의 『미래 세대를 위한 우주 시대 이야기』를 읽고 -어린 시절, 나의 밤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기 금성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내가 커서 저 별에 갈 수 있을까?"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던 밤이 있었다. 그때의 우주는 나에게 끝없는 모험의 무대이자, 두려움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그 찬란했던 밤하늘을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벽은 높았고, 입시와 취업이라는 이름의 ‘지상 과제’들에 매몰되면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조차 사치로 여기며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우주라는 거대한 신비를 잊어버린 채, 땅만 보고 걷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다.그러던 중 손석춘 작가의 『미래 세대를 위한 우주 시대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우주 과학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라는 광활한 바다로 나아가야 할 다음 세대, 그리고 그 항해를 준비시켜야 할 우리 세대에게 던지는 깊은 철학적 선언이자 교육적 지침서였다. 작가는 우주 개발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단순히 기술적 성취로만 보지 않고, 인간이 왜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 존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냈다.책을 읽으며 가장 깊은 울림을 준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인류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생존 때문이 아니라, 결국 존재의 의미를 묻기 위함이다.”이 문장은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우주에 대한 얄팍한 시각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나는 그동안 우주 탐사를 로켓, 인공위성, 화성 정복과 같은 첨단 기술의 전쟁이자 경제적 성과로만 보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인류의 근원적인 존재 이유와 철학적 질문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정의했다.이 대목에서 문득 고등학교 1학년 과학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쏟아질 듯한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류는 아주 먼 옛날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고민해왔다"고 하셨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우주는 단지 멀리 떨어진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마주한 그날의 감정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금 우리가 화성을 향해 탐사선을 보내는 행위는 단순히 새로운 자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를 벗어난 공간에서도 인간은 과연 인간일 수 있는가’를 묻는 가장 거대한 철학적 도전인 것이다.사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나의 꿈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았다. 중학생 시절, NASA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며 우주비행사를 꿈꿨던 기억이 있다. 과학 잡지를 탐독하고, 밤마다 조립 키트를 만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때의 나는 정말로 우주와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마주한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그 꿈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물리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마다, 주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힘든 꿈이야", "너무 비현실적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우주는 나에게 너무 먼 세계'라는 벽을 세워버렸다.그런데 이 책은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너는 그 꿈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잊고 있었던 걸까?”작가는 우주 시대를 소수 엘리트 과학자나 우주비행사만의 전유물로 두지 않는다. 그 세계에는 철학자도, 예술가도, 교육자도, 평범한 시민도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참여해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우주라는 공간이 다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직접 우주선을 타지 않더라도, 우주를 주제로 글을 쓰고, 다음 세대에게 그 신비를 가르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 그 또한 ‘우주 시대의 일원’으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여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책에서 언급하는 우주 산업의 이면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인공위성 데이터 독점, 우주 쓰레기 문제, 민간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적 우주 개발 등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윤리적 진보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나는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늘 불안함을 느꼈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자본의 논리가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우주 개발의 뉴스들을 볼 때마다 ‘과연 이것이 모두를 위한 미래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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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2페이지 | 2,000원 | 조회(15)
  • 판매자 표지 윤해연의 - 레인보우 내 인생 - 을 읽고
    윤해연의 - 레인보우 내 인생 - 을 읽고
    윤해연의 『레인보우, 내 인생』을 읽고윤해연 작가의 『레인보우, 내 인생』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는 책 속 인물들이 내뿜는 숨소리와 눈물, 그리고 작게 터져 나오는 탄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청소년 성장 소설의 틀을 넘어,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의 통증,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차가운 갈등과 뜨거운 화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포용하는 숭고한 여정을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각자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와 남모를 고민들은 마치 잊고 지냈던 내 지난날의 그림자를 들춰내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시간은 단순히 타인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 웅크리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묘한 위로와 치유의 경험이었다.책 속의 주인공은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과 차가운 시선에 지쳐 있었다.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가진 비정정한 위계질서, 그리고 또래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은밀하고도 잔인한 따돌림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얼어붙어 있던 주인공의 마음은 어느 순간 작은 틈을 타 오르기 시작한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갉아먹는 대신, 스스로를 먼저 인정하고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비가 그친 뒤 맑게 게인 하늘에 비로소 피어나는 무지개의 첫 줄기와도 같았다.주인공의 아픔을 보며 나는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중학생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당시의 나는 말수가 적고 늘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부모님은 항상 내가 '모범적인 아이', '성실한 우등생'으로 자라주기를 바라셨고, 나는 그 기대라는 이름의 무거운 껍질을 벗지 못한 채 나 자신을 엄격한 틀 안에 가두었다.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조차 늘 겉핥기에 불과했다. '나답게 말하는 것', 내 진짜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을까?", "선생님께 괜히 잘 보이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진 않을까?" 하는 꼬리를 무는 걱정과 불안이 늘 나를 위축시켰다.그 시절의 나를 색깔로 표현하자면 단연 '흑백' 혹은 '회색'이었다. 선명한 자기 색깔을 지닌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주변 환경에 맞춰 무색무취하게 스며들어 버리는 존재였고, 내 안의 수많은 감정과 빛깔들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흑백 같던 내 삶에 처음으로 자그마한 무지갯빛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들어간 문예부 활동은 내 학창 시절의 가장 큰 분기점이 되었다. 이전까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독특한 감수성과 시적인 언어표현들은 '튀는 행동' 혹은 '이상한 아이'라는 평가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교실 밖, 문예부라는 조그만 동아리방에서 친구들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해주었다.친구들은 내가 적어 내려간 글을 진심 어린 눈으로 읽어주었고, 그 글에 담긴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눈시울을 적시거나 감동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내가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글이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위로가 되고, 내 안의 부서진 감정 조각들이 타인의 마음과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가진 색깔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구나'라는 깊은 울림을 받았다.『레인보우, 내 인생』에서 주인공이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얽혀 있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풀어가며 삶의 본래 색채를 회복해 나가는 인상적인 장면을 보며, 나는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 책상에 앉아 내 첫 시를 써 내려가던 그 떨리던 순간이 오버랩되어 눈시울이 붉어졌다.작품 속에서 '무지개'는 단순히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일곱 가지 색의 아름다운 나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과 다양성, 그리고 나아가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 대한 깊은 은유로 다가온다. 특히 주변의 차가운 편견이나 가족과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결코 자신이라는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 대목에서 나는 대학 진학 무렵 어머니와 격렬하게 부딪혔던 시절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강렬한 희망에 맞춰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시절,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정체성의 공허함은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영혼이 빈껍데기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참아왔던 감정을 터뜨리며 어머니 앞에 섰다. "어머니, 저는 의사가 아니라 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어머니의 실망감은 컸고, 집안에는 오랫동안 냉기 흐르는 정적이 이어졌다. 갈등의 골은 깊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글을 쓰고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가장 밝게 빛나고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신 어머니는, 결국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내 삶이 누군가가 지정해 준 단색의 단조로운 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서로 다투고 조화를 이루며 피어나는 '무지개'라는 사실을 부모님께 비로소 인정받았던 순간이었다.또한 이 책은 나에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 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는 무서운 기준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을 쉽게 소외시키고 상처 주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나 역시 과거 중학교 시절, 반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던 한 친구를 외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말투가 다소 어눌했고, 교복은 늘 주름져 있었으며, 수업 시간에도 혼잣말을 자주 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그 친구를 적극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혹여나 내가 그 친구와 얽혀 불이익을 당하거나 함께 따돌림을 당할까 두려워 조용히 방관하는 쪽을 택했다. 그 비겁했던 침묵은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죄책감과 방관자의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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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0)
  • 판매자 표지 정서휘의 - 드림캐처 - 를 읽고
    정서휘의 - 드림캐처 - 를 읽고
    정서휘의 『드림캐처』를 읽고정서휘 작가의 『드림캐처』는 제목이 주는 직관적인 이미지처럼, 아득한 밤하늘 속에서 꿈을 좇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쉼터이자 하나의 ‘거름망’이 되어주는 작품이었다. 흔히 일상에서 접하는 드림캐처는 창가에 걸어두어 악몽을 걸러내고 오직 좋은 꿈만을 들여보내 준다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 장식품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드림캐처는 단순히 막연하고 달콤한 ‘좋은 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친 현실의 풍파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 자신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진짜 자신의 열정을 구체화하며, 마침내 그 꿈을 지켜내기 위해 외롭게 분투하는 고통과 성장의 과정을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풀어낸다.책장의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단순히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관조하는 제3자에 머무를 수 없었다. 주인공이 겪는 불안과 방황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정밀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에게 “지금 내 인생의 드림캐처는 무엇이며, 나는 어떠한 진실함으로 내 꿈을 붙들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이고도 묵직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었다.나는 어린 시절부터 상상하고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일을 유독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적어 내던 장래희망란에는 망설임 없이 '작가'나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의 냉혹함이나 현실적인 계산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는,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흰 종이 위에 나만의 세계를 그리고 글로 담아내는 시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완벽한 우주가 완성되곤 했다.그러나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교라는 냉정한 경쟁의 장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눈앞의 성적표,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점수로 평가받는 진로 문제는 어린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밤하늘을 수놓던 별처럼 찬란했던 내 예술적 꿈들은 현실이라는 가파른 벽 앞에서 점차 빛을 잃고 희미해졌다. 주변의 어른들은 내 감성과 예술적 열정을 보며 “꿈은 그냥 취미로 남겨둘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했고, 결국 나의 순수했던 열정은 어른들의 틀 안에 무력하게 갇혀버리고 말았다.『드림캐처』의 주인공 역시 이와 놀랍도록 닮은 고민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현실의 벽과 꿈 사이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괴리감,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좌절의 순간들. 주인공이 겪어내는 그 감정의 궤적들은 내가 가장 외롭고 불안했던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과 지독하리만큼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누군가가 나만 알고 있던 비밀 일기장을 몰래 읽어주는 듯한 깊은 공감과 먹먹함을 느꼈다.하지만 소설이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계속해서 꿈을 꾸는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실패와 외면 속에서도 끝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믿어주고, 무너지더라도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일어서는 주인공의 투지는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열정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성인이 된 지금의 내가, 상처받고 위축되어 있던 과거의 어린 나를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를 건네는 듯한 거룩한 기분을 선사했다.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울렸던 구절은 바로 “꿈은 타인의 기대 안에서 결코 자라지 않는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멍하니 멈춰 서 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스스로의 순수한 갈망보다는 누군가의 기대와 사회적인 인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갇혀, 내 진짜 꿈을 타협하고 변형시켜 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고등학교 3학년,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을 때였다. 당시 문과 계열에 재학 중이던 나는 부모님의 강렬한 바람과 권유에 따라 안정성이 보장된 간호학과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권유가 이어졌지만, 내 깊은 내면에서는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길이 아니다”라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지만, 결국 나는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와 우려 속에서도 나는 내 의지로 생명과학과를 선택했다. 문과생으로서 이과 학문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인체와 생명의 미세한 메커니즘을 탐구하며 내 진로는 바이오 실험과 연구 분야로 자연스럽게 넓어졌다.결국 그 위험천만했던 선택은 내가 ‘타인이 정해준 삶’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꿈’을 향해 내딛은 인생 첫 번째의 주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누군가가 짜놓은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간절한 의지로 삶의 키를 잡을 때 비로소 진짜 나만의 꿈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드림캐처』 속 주인공이 자신에게 씌워진 단단한 프레임을 깨뜨리고 진짜 자신과 곧바로 마주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 시절 눈물 흘리며 밤을 지새우던 내 모습이 겹쳐져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다.『드림캐처』가 흔한 자기계발서나 진부한 성장소설과 궤를 달리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차분한 희망만을 노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감정의 깊은 골짜기, 예기치 못한 시련과 상처, 배신의 아픔, 그리고 가혹한 실패가 가감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참담한 비극 속에서 단순히 무너지지 않고, 상처를 딛고 서서 한층 더 단단한 용기를 피워낸다. 이러한 주인공의 서사는 나의 대학 시절 시련과 완벽히 오버랩되었다.대학 진학 후,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던 나는 뜻밖의 거대한 좌절을 맞닥뜨렸다. 학부생으로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연구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실험이 원인을 알 수 없이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며칠 밤을 새우며 준비한 실험 결과가 무위로 돌아갈 때마다 느꼈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지도 교수님의 매서운 질책이 이어지자 나는 순식간에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주변의 동기들은 하나둘씩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어내며 성과를 발표하고 있는데, 나만 홀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무능력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다.참담한 자괴감 속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남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었다.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실패 자체를 연구 과정의 유의미한 한 부분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실패했던 실험 노트들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 들고, 시약의 농도부터 온도, 시간 조건까지 하나하나 원인을 다시 추적하고 분석해 나갔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복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데이터가 정돈되기 시작했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나는 잃어버렸던 자신감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의 곁을 지키던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너의 무능함을 잴 수 있는 저울이 아니라, 네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야.” 책 속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대학 연구실의 차가운 불빛 아래서 홀로 실험 노트를 넘기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다시 한번 가슴이 울컥했다. 나 역시 나만의 실패라는 지도를 그려가며 길을 찾아온 사람이었기에, 그 문장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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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19)
  • 판매자 표지 손영배의 - 이제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다 - 를 읽고
    손영배의 - 이제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다 - 를 읽고
    손영배의 『이제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다』를 읽고학창 시절, 우리는 마치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진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고등학교 진학, 명문대 입학, 그리고 대학원 진학이나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어지는 계단. 이처럼 ‘학력’이라는 명확한 층계를 오르는 것만이 곧 인생의 성공이자 정답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손영배 작가의 『이제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다』는 깊은 관성에 젖어 있던 나의 사고를 뿌리째 흔드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이 책은 단순히 “진학보다 진로가 중요하다”라는 진부한 당위를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와 같이 인간 본연의 삶과 직결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저자는 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교육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내내, 나는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 자신과 마주하며 긴 대화를 나누는 듯한 깊은 울림을 받았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나였다. 당시 나는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모범생’의 틀 안에 있었다.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늘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 문제를 풀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지식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그리고 내가 이 배움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저 시험 범위에 맞춰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문제집을 풀 뿐이었다.친구들과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마다 오가는 질문은 항상 “이번 모의고사 몇 등 나왔어?”, “너 목표 대학이 어디야?”, “입시 컨설팅은 어디서 받냐?”는 등 순위와 입시에 국한되어 있었다. “너는 어떤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해?”, “어떤 일을 할 때 너라는 존재가 빛나는 것 같아?” 같은,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질문은 그 누구도 던지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나의 꿈과 진로’를 주제로 자유 발표를 진행하셨다. 평소 마음에 품고만 있던 생각을 용기 내어 꺼내어 놓았다.“저는 제 생각을 글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발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명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러나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글쓰기는 그냥 취미로 하고, 일단은 의대나 안정적인 학과 준비해. 너 성적 되잖아. 나중에 후회한다.”그 순간, 친구의 현실적인 조언은 어린 나에게 거역할 수 없는 진리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 ‘안정성’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나의 꿈은 너무나 무기력해 보였다. 결국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품었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철없는 괜한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깊이 묻어두고,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진학 코스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책 속에서 손영배 작가는 ‘자기 탐색’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학벌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을 비판하며, ‘좋은 대학’이라는 명찰을 달기 전에 ‘나에게 맞는 좋은 방향’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 구절을 읽는 동안 나의 대학 시절이 선명하게 오버랩되었다.수능을 치르고 결국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심각한 방향 상실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선택한 전공 과목은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매일 아침 캠퍼스를 걸어가는 발걸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heavy했다.오히려 전공 수업보다 동아리 활동이나 학과 문예지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며 밤을 새워 글을 고치고 기획을 할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영혼 없는 삶과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2학년이 되어서야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나의 적성과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진로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당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멀쩡한 길을 두고 왜 돌아서 가느냐”,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아니냐”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레일에서 잠시 벗어나 ‘진짜 나의 길’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고 값진 순간이었다. 『이제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다』는 그때 내 결정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오히려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음을 확신시켜 주었다.저자는 진로교육의 본질이 ‘하나의 고정된 꿈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탐색하는 유연한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진로는 정지된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확장되는 '방향성'이라는 지적은 나에게 커다란 위로와 격려로 다가왔다.사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나의 삶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지 않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선택했던 교육업계는 막상 경험해보니 나의 성향 및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깊은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해야 했다. 이후 연구보조원으로 자리를 옮겨 실험과 데이터 분석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이 경험을 고리로 삼아 품질관리와 제약업계 영역으로 차근차근 나의 전문성과 범주를 넓혀나갔다.분야를 바꾸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매 순간마다 불안감은 어김없이 찾아왔다.‘내가 지금 정말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남들은 한 우물만 파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제자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 선택이 10년 뒤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하지만 손영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나에게 다정하게 답을 건네주었다. 진로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곡선의 오솔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우회’와 ‘시행착오’야말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최선의 정답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직간접적인 다양한 경험을 통과하며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형태를 구체화할 수 있었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주관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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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1)
  • 판매자 표지 한성윤의 - 인생은 오타니처럼 - 을 읽고
    한성윤의 - 인생은 오타니처럼 - 을 읽고
    한성윤의 『인생은 오타니처럼』을 읽고 ?오타니 쇼헤이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야구계의 오래된 불문율이자 상식이었던 ‘투타겸업’이라는 무모한 꿈을 최고의 현실로 증명해 낸 인물. 그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지 않고,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길을 치열한 노력과 굳건한 신념으로 개척해 냈다. 한성윤 작가의 『인생은 오타니처럼』은 단순한 스타 선수의 성공담이나 영웅전이 아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진정 나답게 살 수 있는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완성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던지는 깊이 있는 인생 철학서에 가까웠다.책장을 넘기는 내내 나는 오타니의 독보적인 도전 정신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동안 걸어온 내 삶의 궤적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그 안에서 겪었던 좌절과 회피, 그리고 작게나마 불씨를 지폈던 도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책은 잊고 지냈던 ‘나라는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금 정면으로 바라보고 믿게 만들어 주었다.학창 시절부터 나는 늘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강요 아닌 압박 속에서 살아왔다. 문과와 이과, 안정적인 길과 원하는 꿈, 전공과 적성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 어른스럽고 현명한 처세라 여겨졌다. 그렇기에 오타니가 메이저리그라는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도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처음에는 그저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한 과시나 과욕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오타니의 투타겸업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과 가능성을 온전히 펼쳐내겠다는 ‘자기다운 삶을 향한 용기’이자,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숭고한 선언이었다.돌아보면 나 역시 비슷한 갈등의 시간을 지나왔다. 대학 시절 생명과학을 전공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일에는 정밀함과 논리가 요구되는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몰두했고, 주말이면 문예창작 수업을 들으며 새벽까지 문장을 다듬었다. 주변에서는 염려와 회의가 섞인 시선을 보냈다.“한 우물만 파도 힘든 세상인데, 왜 힘을 분산하니?”“과학과 글쓰기는 너무 동떨어진 분야 아니야?”그 말들에 때로는 흔들리고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과학이 주는 정밀한 논리성은 내 글에 깊은 설득력을 더해주었고, 글쓰기가 주는 풍부한 감성은 메마르기 쉬운 연구실 생활에서 나를 지탱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서로 상극처럼 보였던 두 영역이 사실은 서로를 보완하며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양 날개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오타니가 투수로서의 감각을 타격에 활용하고, 타자로서의 경험을 투구 전략에 녹여내듯, 삶의 다양한 경험은 결코 버려지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든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또한 책 속에서 오타니가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다루는 방식은 나에게 커다란 인상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체력적·신체적 한계에 부딪힐 때 결코 자책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한 기록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객관화하고, 이를 극복할 전략으로 전환했다.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자책 대신 ‘어떻게 하면 나만의 방식으로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건설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이 대목에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나를 괴롭혔던 발표 공포증을 떠올렸다. 남들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려 제대로 말을 맺지 못했던 경험은 어린 시절 큰 상처였다. 대학 진학 후 수많은 팀 프로젝트와 프레젠테이션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도망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오타니처럼 내 약점을 인정하고 다르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발표 자체의 화려함보다는 철저한 자료 조사, 깔끔한 시각 자료 제작, 스크립트의 완벽한 숙지라는 ‘전략적 준비’로 승부를 걸었다. 비언어적 태도를 연습하고 반복해서 훈련하자, 어느새 나는 팀 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약점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약점을 인정하고 나만의 방식을 찾았던 그 경험은 오타니의 사고방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더불어 책은 단순히 야구 기술을 넘어 체력 관리, 멘탈 케어, 사고의 유연성, 주변인에 대한 태도 등 인간적인 성숙을 이뤄낸 ‘통합적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오타니를 조명한다.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장 생활을 하며 느낀 점 역시, 이제는 단 하나의 고정된 직무 역량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업무를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뿐만 아니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문서 작성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데이터 분석력까지 다각도의 역량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타니의 멀티 플레이어적 삶은 비단 야구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필수적인 생존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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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2페이지 | 2,000원 | 조회(27)
  • 판매자 표지 조승우의 - 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 - 을 읽고
    조승우의 - 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 - 을 읽고
    조승우의 『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을 읽고1. 서론: ‘무거운 숙제’ 같았던 공부와의 오래된 동행나에게 공부는 오랫동안 ‘즐거움’이나 ‘탐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저 ‘해야만 하는 것’, 혹은 끊임없이 나를 타인과 비교하게 만드는 ‘무거운 숙제’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표는 나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고, 시험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느꼈던 중압감은 불안과 스트레스라는 형태로 나를 눌렀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공부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내 안의 순수한 호기심은 성적이라는 숫자 뒤로 철저히 숨죽여야 했다.하지만 조승우 작가의 『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을 읽고 난 후, 나는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암기 팁이나 점수를 올리는 일시적인 테크닉을 알려주는 흔한 학습법 서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를 대하는 근본적인 자세, 내면에서 솟아나는 자발적 동기, 그리고 지식을 탐구하는 행위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확장하고 빛나게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 담긴 안내서였다.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던져지는 메시지들은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했고, 공부에 대한 나만의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2. 본론 1: 회피와 좌절의 기억,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내가 공부에 대해 가장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방황했던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별 난이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수학의 개념들은 복잡해졌고, 영어 문법은 외워야 할 예외 사항들로 넘쳐났으며,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 일쑤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식이 쌓이는 뿌듯함보다는 혼란스러움과 무력감이 커졌고, 결국 나는 시험지 앞에서 매번 패배하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꼈다.그 무렵 나는 무의식적으로 공부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요약집만 찾아 근시안적으로 암기했고, 교과서의 깊은 내용보다는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 유형을 외우는 데 급급했다. 공부는 나에게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었기에, 시험이 끝나면 머릿속에 남은 지식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원래 공부와 맞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어린 시절 세상을 향해 품었던 순수한 호기심의 문도 서서히 닫혀갔다.그런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든 것은 책 속의 한 구절이었다.“공부가 고통스러운 건 그것이 나와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본래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순수한 도구다.”이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는 한동안 책을 덮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었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라는 인격을 성숙시키기 위한 탐구가 아니라, 오직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단기 기억 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와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을 쌓아두고, 그것을 그저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만 다루었으니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3. 본론 2: 문학 수업에서 경험한 작은 설렘의 기억책을 읽으며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문학 수업 시간, 교과서에 실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배우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선생님께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 인물 구도, 서정적인 문체 등 시험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요점들을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기 직전, 선생님께서는 평소와 달리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시험 문제를 떠나서, 여러분은 오늘 읽은 내용 중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 깊이 남았나요? 그리고 왜 그 장면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였나요?”그 질문은 단순한 문제 풀이가 아니었다. 늘 정답만을 강요받던 나에게 처음으로 ‘너의 생각과 감정은 어떠한가’를 물어봐 준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숙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작품을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달빛 아래 하얗게 펼쳐진 메밀밭 길을 걸어가는 허생원이라는 인물의 고독과 지나간 날에 대한 회한, 그리고 낯선 동행자와의 길 위에서 느껴지는 묘한 따뜻함이 비로소 나만의 감정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글자 그대로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 담긴 삶의 온도를 느끼고 나와 연결 짓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이상한 설렘을 느꼈다. "아, 공부라는 것이,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그날의 경험은 짧았지만, 지적 탐구가 줄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의 씨앗으로 내 안에 남아있었다.『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은 먼지 쌓여 있던 그 시절의 설렘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저자는 우리가 공부를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는 스스로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 공부가 주는 내면적인 즐거움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배움에 대한 설렘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공부를 사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격려한다. 그 따뜻한 위로는 공부에 지쳐 있던 내 마음에 깊은 울림과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주었다.4. 본론 3: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찾아낸 ‘나’라는 존재조승우 작가는 공부를 단순히 성적이나 스펙을 쌓기 위한 ‘성취의 수단’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는 공부를 자신을 깊이 있게 다듬어가는 ‘자기이해’와 ‘자기신뢰’의 긴 여정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나는 이 관점에 강력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대학에 진학한 후, 나는 진로와 전공을 둘러싸고 깊은 갈등을 겪었다. 생명과학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실험 데이터를 다루는 것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글을 쓰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문학적·인문학적 감수성 또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해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고 조언했고, 나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꼈다.하지만 나는 융합적인 탐구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생명과학을 본전공으로 공부하면서도 심리학 과목을 청강하고, 교양 글쓰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말에는 인문·철학 서적을 찾아 읽었다. 처음에는 좁은 전공 공부에만 몰두하는 것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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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6)
  • 판매자 표지 채희경의 - 동물신곡 - 을 읽고
    채희경의 - 동물신곡 - 을 읽고
    채희경의 『동물신곡』을 읽고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신곡』. 단테 알리기에리의 유명한 고전 『신곡(Divine Comedy)』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이 타이틀에 '동물'이라는 단어가 결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한 상상력과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무거운 상징과 우주적·종교적 상상의 공간을 연상케 하는 제목 속에서, 나는 막연히 알레고리(풍자적 비유)로 가득 찬 철학적 우화나 우화 소설 같은 내용을 예상했었다.그러나 실제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실제 내용은 단순한 상상 속 우화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묵직한 존재론적·생명윤리적 고찰과 함께, 오랫동안 공고히 유지되어 온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를 정면으로 허물고자 하는 치열한 윤리적 정면승부가 기다리고 있었다.이 책은 동물을 단순히 인간의 필요나 유희를 위해 존재하는 객체(Object)로 다루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고유한 '존재(Being)'로서 그들이 겪는 고통과 감정, 그들만의 언어와 침묵, 그리고 죽음과 윤리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간의 시선이 얼마나 오만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비추며, 오랫동안 인류가 구축해 온 인간 중심의 서사를 무너뜨린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 자신의 ‘시선’과 ‘당연함’을 처음으로 낯설게 느끼게 되었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깊은 반성과 침묵 속에 잠겨야만 했다.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길가에서 만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TV 동물 프로그램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좋아한다'는 감정은 돌이켜보면 지극히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대상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귀엽다’,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초등학교 5학년 무렵, 친구 집에서 다정하게 재롱을 떨던 강아지를 보고 온 날부터 나는 부모님을 며칠 동안 떼를 쓰듯 졸라 마침내 조그마한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이름은 ‘몽이’. 내 품에 꼭 안겨 체온을 나누며 잠들고, 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 때면 세상이 떠나갈 듯 꼬리를 치며 반갑게 달려오던 몽이는 내 삶에 들어온 첫 번째 반려동물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하지만 그 따뜻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입시학원 스케줄이 빽빽해지면서 나는 점점 바빠졌고, 자연스럽게 몽이와 산책을 나가거나 눈을 맞추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집에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나를 기다리던 몽이의 일상은 점차 우울해져 갔고, 결국 부모님은 논의 끝에 몽이를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당시 어린 나는 ‘내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시골 마당에서 뛰놀면 몽이에게도 더 좋을 거야’라며 상황을 합리화하고 넘어갔다.그러나 『동물신곡』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 시절 나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었는지를 깨닫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몽이는 내 외로움을 달래주고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내가 상황이 여의치 않고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 타인에게 너무나 쉽게 ‘전가’할 수 있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었다.채희경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일갈한다.“인간은 동물을 소유함으로써 그 존재를 규정짓는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고유한 주체다.”이 문장은 마치?리한 칼날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몽이에게 진정한 의미의 '함께함'을 제공하지 못했다. 몽이의 세계에서는 내가 삶의 전부였을 텐데, 나는 몽이를 단지 내 삶의 편리한 일부로만 여겼던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동물을 키운다'라는 시혜적인 표현 대신,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라는 언어가 지닌 윤리적 무게감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뼈저리게 각인시켜 주었다.『동물신곡』에서 가장 가슴을 비벼 파는 듯한 뼈아픈 장면들은,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통을 오직 ‘침묵’과 ‘비명’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조명할 때였다. 동물은 결코 감정이나 언어가 없는 비존재가 아니다. 다만 인간의 협소한 언어 체계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독자적인 감정과 메시지를 지닌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들의 눈빛, 떨림, 그리고 절박한 움직임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는커녕, 철저히 무시하고 번역을 거부해 왔다.책을 읽으며 나는 대학교 1학년 시절 경험했던 한 순간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당시 교양 수업의 일환으로 동물보호단체의 생명윤리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공장식 축산업의 참혹한 실태를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 상영이 끝나고, 학대 현장이나 농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돼지와 닭들의 사연을 담은 사진 전시가 이어졌다.그곳에서 나는 평생 몸을 돌릴 수도 없는 배터리 케이지 안에서 알만 낳다가 구출된 한 암탉의 사진과 사연을 마주했다. 오랜 갇힘 생활 때문에 날개 근육이 퇴화하여 펴지지도 않았고, 바닥을 밟아본 적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사람의 작은 손길에도 공포에 질려 발작을 일으키는 상태였다. 그 설명을 읽는 순간, 내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던 '맛있는 치킨'이나 '편리한 계란'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참혹한 대가가 실체화되어 다가왔다. 충격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내 식탁 위에 올라오던 단순한 음식 뒤에는, 한 생명이 평생에 걸쳐 견뎌내야 했던 '고통당한 존재의 침묵'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책에 등장하는 농장동물, 유기동물, 실험실의 유리병 속에 갇힌 실험동물, 그리고 인간의 구경거리가 된 전시동물들의 이야기는 결코 삼류 신파극의 ‘불쌍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능과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저지른 거대한 윤리적 실패의 진공 상태이자 정교한 기록이다. 그리고 나는 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혜택을 누려온 방관자이자 공범이었다. 책은 나로 하여금 그동안 외면해 왔던 거대한 침묵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고,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하게 타자의 고통을 소비해 왔는지를 철저하게 자각하게 했다.『동물신곡』은 단순히 동물의 비참한 고통을 고발하고 죄책감을 자극하는 데서 펜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 개개인의 삶을 향해 끊임없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우리는 과연 인간 외의 존재들과 얼마나 윤리적으로 공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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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1)
  • 판매자 표지 이사벨 메이라의 - 좋아요의 함정 - 을 읽고
    이사벨 메이라의 - 좋아요의 함정 - 을 읽고
    이사벨 메이라의 『좋아요의 함정』을 읽고1. 책과의 첫 만남, 그리고 예상을 깨트린 전개이사벨 메이라 작가의 『좋아요의 함정』은 단순한 소셜미디어 비판서나 디톡스를 권장하는 평범한 계몽서가 아니다. 이 책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현대인의 삶과 자아, 인간관계,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미세한 심리적 균열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는지를 매우 날카롭고 서늘하게 짚어낸다.처음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는 "어차피 SNS 중독의 폐해나 화면을 줄이라는 흔한 이야기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벼웠던 마음은 이내 서늘해졌고, 책장 속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뜨겁게 찌르고 들어왔다. 왜냐하면 책 속에서 파헤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초상은 타인의 삶이 아닌, 바로 ‘지금의 나’에 대한 지독하리치만큼 정교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무심코 SNS를 켜고 화면을 내리던 방식, 게시물을 올린 후 핸드폰을 들락거리며 느꼈던 알 수 없는 불안감, 기대했던 만큼 반응이 없을 때 밀려오던 기괴한 공허함, 그리고 잘 정제된 남들의 삶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존감을 갉아먹었던 수많은 밤들이 이 책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2. 학창 시절과 ‘인정 욕구’라는 도파민의 시작나의 SNS 잔혹사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올라간다. 입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그 시기, 친구들과의 소소한 일상이나 시험 기간의 피로감을 SNS에 털어놓는 것은 유일한 숨통이었다. “오늘도 4시간밖에 못 잤다… 끝없는 공부, 언제쯤 끝날까” 같은 글을 올리면, 화면 너머의 친구들이 “대단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화이팅!”이라는 댓글과 함께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그 작고 붉은 하트 모양의 숫자는 팍팍한 수험생 생활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순수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시작했던 공간은 어느새 나를 조종하는 주인이 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글의 내용보다 ‘좋아요 수’라는 정량화된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글을 올려도 어떤 날은 좋아요가 50개가 넘게 찍히는 반면, 어떤 날은 10여 개에 머물렀다. 그 숫자의 변동에 따라 나의 존재 가치가 달라지는 듯한 기이한 착각에 빠져들었다.더 많은 관심과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내 문장은 점점 과장되고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단순히 “오늘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는 담담한 고백 대신, “진짜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다. 제발 누구든 나 좀 구해줘…” 같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던져야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솔직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 고통을 상품화하고 포장했던 셈이다.『좋아요의 함정』에서는 이러한 행동 패턴이 인간의 뇌 속 ‘쾌락 회로’ 및 도파민 분비 메커니즘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고 지 설명한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주는 달콤한 자극은 뇌에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시키고, 이 자극이 반복되면 인간은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왜곡하고 솔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포장하면서까지 타인의 반응을 구걸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멍하니 멈춰 서야 했다. 책에 적힌 그 중독의 메커니즘은 과거 내가 겪었던 자아 분열의 과정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3. 연출된 일상과 사라진 ‘지금, 여기’의 순간들대학교 입학 후 나의 SNS 사용은 인스타그램이라는 인위적인 시각적 무대로 옮겨갔다. 여행지에서 찍은 화려한 풍경, 인스타 감성이 물씬 풍기는 카페의 디저트, 강의실에서 연출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셀카들. 처음에는 그저 청춘의 기록이라고 믿었던 게시물들은 점차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퍼포먼스로 전락했다. 어떤 각도로 찍어야 비율이 좋아 보이는지, 어떤 필터를 적용해야 분위기가 고급스러워 보이는지, 어떤 문구를 적어야 쿨해 보이는지가 내 삶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친구들과 떠났던 캠핑에서 터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행이었음에도, 나는 모닥불 앞에서 나누는 깊은 대화나 밤하늘의 별빛이 주는 정취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 채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친구들과의 진심 어린 교감보다는 “이 사진은 인스타 감성으로 딱이다”라며 조명과 각도를 세팅하는 데 몰두했다. 그날 밤, 나는 풍경을 감상하는 대신 밤새 사진 필터를 고르고, 어울리는 문구를 고민하며 포스팅을 완료했다.그러나 정성스레 올려둔 게시물의 반응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 순간 밀려온 알 수 없는 허무함과 자괴감은 여행 전체의 기분을 망쳐버렸고, 나는 다음 날 하루 종일 가라앉은 기분으로 친구들 눈치를 봐야 했다. 정작 눈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껍데기만 남은 채 지나가 버린 것이다.이사벨 메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단언한다.“우리는 이제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출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퍼포먼스로 전환시킨다.”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의 부끄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삶 전체를 '타인의 시선이라는 관객'을 위한 무대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음식을 식게 만들고, 타인의 반응을 얻기 위해 실제로는 우울하면서도 가장 행복한 표정을 연기하며, 정작 내 진짜 감정은 외면한 채 ‘공감받기 딱 좋은 형태의 슬픔’만을 가공해 올렸던 나 자신의 타락한 연출 기법이 시리도록 아프게 드러난 순간이었다.4. 얕은 연결의 홍수 속에서 찾아온 깊은 고립감책은 소셜미디어가 가진 또 다른 본질적인 역설을 파헤친다. 바로 “SNS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가장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장치”라는 점이다. 팔로워 수가 수천 명에 달하고, 게시물마다 수백 개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는 사람일수록, 정작 현실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나 역시 그 역설의 피해자였다. 한창 SNS 활동에 몰두했을 당시, 내 핸드폰은 DM과 알림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의 빈자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막상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혹은 마음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 선뜻 연락할 수 있는 진짜 내 편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과 슬픔마저도 '스토리'라는 형태로 가공되어 팔로워들에게 한 편의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누군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 오늘 정말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조차 잃어버렸던 것이다.책 속에서 저자는 “진짜 관계는 자기 노출의 양이 아니라, 깊은 내면의 교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많은 가상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얕고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라 진을 빼는 동안, 내 옆에 있던 진짜 소중한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를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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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6)
  • 판매자 표지 양지열의 - 과학 재판을 시작합니다 - 를 읽고
    양지열의 - 과학 재판을 시작합니다 - 를 읽고
    양지열의 『과학 재판을 시작합니다』를 읽고우리는 흔히 법정을 ‘진실이 맑게 드러나는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세상에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고, 첨단 과학은 그 진실을 오차 없이 밝혀낼 수 있으며, 법관은 어떤 편향도 없이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우리 사회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양지열 작가의 『과학 재판을 시작합니다』를 펼쳐 들고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고수해 왔던 그 굳건한 믿음에 깊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이 책은 법과 과학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두 지성이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그 만남이 항상 유토피아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정확하게는 과학이라는 객관적 도구가 어떻게 법정에서 억울한 자의 누명을 벗겨주는 결정적 열쇠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교묘한 정당화를 거쳐 진실을 은폐하는 아득한 안개가 되기도 하는지 그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시의적절하게 드러낸다.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가장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 대목은, 우리가 그토록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 신봉했던 과학적 증거조차도 결국 ‘해석’이라는 인간적 과정을 거치며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의 세계에서 과학은 흔히 논박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처럼 다루어진다. 정교한 DNA 감식 결과, 지문 및 혈흔 분석, 고화질 CCTV 영상,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 기록 등은 그 자체로 명백한 물증이 되어 법정에 제출되고, 한 인간의 자유와 명예, 나아가 생명까지 좌우한다.그러나 법조인이자 과학적 지식을 통찰력 있게 풀어낸 양지열 작가는, 그러한 증거들 역시 완벽한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해석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동일한 수치와 수집된 과학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맥락화하느냐에 따라 판결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이러한 지적은 내가 과거 대학교 시절 직접 겪었던 경험과 묘하게 맞닿아 있어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대학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근무하며 매일 같이 PCR(유전자 증폭), 전기영동, 단백질 정량 분석 등 세밀한 실험 기구와 씨름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상을 보냈다. 실험실은 항상 정밀함과 냉철한 객관성이 지배하는 공간처럼 보였다.그러나 어느 날 한 동료가 진행하던 중요한 실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음에도,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할 때마다 모호하고 미세하게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수치상으로는 분명 '효과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전체 실험 과정의 맥락과 미세한 변수들을 고려하면 그것을 absolute truth(절대적 사실)로 확신하기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데이터는 분명 ‘사실’의 파편을 담고 있지만, 그 파편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서사로 설명해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며, 그 설명의 과정에는 개인의 기대나 편향, 즉 ‘주관적 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과학 재판을 시작합니다』를 읽는 내내, 실험실 테이블 위에서 느꼈던 그 한계와 무력감이 법정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공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에 제출된 과학적 증거는 사실 전체가 아니라 단지 일부분의 단서일 뿐이다. 정작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법정에서는 그 부분적인 사실들을 얼마나 그럴듯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엮어내느냐가 판단의 우위를 점하곤 한다.나아가 저자는 과학이 때로는 정교한 권력의 도구로 악용되거나 신화화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수치, 그래프, 전문 용어로 포장된 '과학적 증거' 앞에서 일반 배심원은 물론 판사들마저 지적 중압감을 느끼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절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술이 주는 특유의 권위는 대중에게 '오류가 없을 것'이라는 거짓된 확신을 심어준다.하지만 나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실감한다. 과학적 분석 결과의 뒤편에 숨겨진 '누가 감정했는가', '어떤 정밀도의 장비와 절차를 거쳤는가', '어떤 주관적 해석이 가미되었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들은 너무나도 쉽게 생략되기 때문이다.과거 실험실에 있을 때, 나 역시 사소한 실수로 샘플 라벨을 잘못 붙여 완전히 엉뚱한 결론이 나올 뻔했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논문 초안 제출 전에 오류를 발견해 바로잡았지만, 단 한 줄의 잘못된 기록이나 유의미하지 않은 오차가 전체 결론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사건이었다. 연구실에서의 실수는 논문의 수정으로 끝나지만, 법정에서의 실수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파괴한다.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실제 오심 사례들?편향된 과학 감정인의 진술, 입증되지 않은 과학 모델의 오용 등?은 나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우리는 과연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커다란 통찰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만든 도구(법과 과학)들이 역설적이게도 진실로부터 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고한 점이다. 법과 과학은 모두 ‘진실의 추구’라는 숭고한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둘 다 인간이 만든 제도이자 학문이기에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이 불완전한 두 영역이 정교하게 결합될 때, 오류는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착시와 왜곡을 만들어낸다.생각해 보면 이러한 한계는 비단 법정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SNS나 미디어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사회적 논쟁들을 떠올려보라. 백신 접종의 안전성, 기후 변화의 원인, 유전자 조작 식품(GMO)의 위험성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이들은 저마다 정교한 논문 수치와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각자가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거세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서로의 진영 논리만 강화된 채 끝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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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창작 | 2026.08.24 | 3페이지 | 2,000원 | 조회(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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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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