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의 생애와 민족 운동
- 최초 등록일
- 2002.10.31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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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출생과 성장
2. 1차 도미(渡美)와 공립협회의 결성
3. 국내활동 - 신민회 결성
4. 망명과 독립운동기지 개척
5. 2차 도미 -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창단
6. 흥사단(興士團)의 조직
7.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과 국민대표회의 개최
8.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와 3차 도미
9. 유일당운동과 한국독립당의 결성
10. 옥고와 국내에서의 구국활동
본문내용
도산 안창호는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도롱섬에서 농부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8살까지 집에서 글을 배웠고 집안일을 도우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4살부터 16세까지 김현진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한 도산은 같은 서당을 다니던 필대은과 교류하며 신사상을 키워 나갔다. 도산이 16세 되던 해인 1894년은 동학농민혁명운동과 청일전쟁 등으로 혼란할 무렵이었다.
청일전쟁 당시 도산은 평양에서 전투가 벌어져 주민들이 피난하고 명승고적들과 가옥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때 도산은 우리 민족의 불행은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한 도산은 1895년 밀러학당(후에 구세학당으로 부름) 보통부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신학문을 접하고 3년 간 공부한 뒤 졸업하였는데, 졸업 후에는 조교로 근무하였다. 이 무렵 기독교에 입교한 도산은 기독교를 통하여 서구의 자본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계질서를 지배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바로 보고 철저한 자기비판 의식을 통해 우리 민족도 실력양성, 즉 '힘'을 길러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