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김제남과 영창군은 살해되었고 인목대비의 원한은 깊어만 갔다. ... 선조가 세상을 떠난 순간부터 인목대비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선조가 죽은 다음날 광해군을 즉위시켰다. ... 그들은 첫 국문에서 “왕과 세자를 제거하고 국새를 인목대비에게 넘긴 뒤 수렴청정하다가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 인조반정 직후,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 : 과 상통하는 내용 - 명온공주 : 오라버니 익종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기가 지은 시를 평해 달라고 ... 대리해서 신하에게 내린 조서 또는 전교 - 정순대비(순조 때), 순원왕대비(헌종 때) : 암행어사에게 임무수행을 성실하게 하라고 당부 * 정치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음 - 인목대비
,남이공,남이신 박승종 이산해 광해군 즉위 지지 영창대군 즉위 지지 육북(骨北) 홍영순,이이첨 중북(中北) 정온,정창연,이명,유몽인 탁소북(濁小北) 청소북(淸小北) 유영경 남이공 인목대비 ... 실패 사림 동인 남인 북 인 서인 이조전랑직 선조 때 정치구와 정치일지 주요일지 광해군 때 정치구와 정치일지 광해군 즉위년(1608) 소북 영수유영경 사사. - 5년(1613) 인목대비
또한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불효를 저지른 인물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인목대비는 줄곧 광해군이 선왕인 선조를 독살하였다고 주장해 유폐를 자초한 인물이다. ...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은 9살의 어린나이에 강화도로 유배되어 아궁에 계속 불을 지펴 숨을 못 쉬게 하는 잠열로 죽음에 이르렀다. ... 앞서 말했듯 왕위에 오를 당시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그리고 형인 임해군 등의 세력에 눌려 왕권이 매우 위태로웠던 광해군에게 전란복구만큼이나 시급했던 것은 왕권을 공고히 하는 일이었다.
또한 인목대비가 폐비되어 유폐 된 곳 이기도하다. 이러한 아픈 이야기들을 스스로 간직하기라고 하듯 다른 궁궐의 화려한 색채와 대비하여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모습이다. ... 그리고 1618년 인목대비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 이라 낮추어 부르기 시작했다.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경운궁’으로 이름을 다시 바꾼 후 즉조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