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대한 개괄조사
- 최초 등록일
- 2010.11.28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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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수궁에대한 개괄조사입니다//
목차
Ⅰ. 개관
1. 덕수궁의 역사
2. 대한문
Ⅱ. 중화전
1. 중화전의 구조
2. 중화전의 일화
Ⅲ. 석어당
1. 석어당 개관
Ⅳ. 덕홍전
1. 덕홍전 개관
Ⅴ. 함녕전
1. 함녕전 개관
Ⅵ. 정관헌
1. 정광헌의 구조와 기능
Ⅶ. 즉조당,중명당
1. 즉조당
2. 중명당
Ⅷ. 석조전
1. 석조전의 역사와 구조
2. 현재의 석조전
3. 신고전주의 건축이란?
Ⅸ. 그 외건물들
1. 덕수궁미술관
2. 광명문
3. 중명전
본문내용
Ⅰ. 개관
1. 덕수궁의 역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2. 대한문
원래의 대한문은 지금보다 더 길 쪽으로 나가 있던 것을 1960년대에 14m 후퇴시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기단 부분은 매몰되고 좌우 담장은 새로 쌓았다. 1902년에 세운 대안문이 1904년 불에 타자 1906년 중건하고 이름은 대한문으로 바꾸었다. 문은 동향하였고 단층 정면 3간으로 다른 궁의 중문과는 격이 다르다. 다포계의 공포, 겹처마 우진각지붕이며 내부 천장의 가운데는 연등에다가 좌우 간에서는 우물반자를 한 구조이다. 지금 문지방이 보이지 않는것은 차가 드나들 수 있게 변형하였기 때문이다. 법전인 중화전이 남향한 데 비하여 오늘의 정문인 대한문은 동향하고 있다. 1919년 고종의 인산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 앞에 몰려들어 통곡하였다. 대한문 편액은 남정철이라는 대신이 쓴 필체이다. 문 좌우로 이어져 있는 기둥보다 낮은 궁성은 원래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쌓은 것이다.
중도리 안통에만 우물반자를 하였는데, 그것도 좌우 간에만 반자를 들이고 나머지는 전체가 연등이며 단청도 화려하지 않게 모로단청 하였다. 마루에는 양성(梁城)을 하고 각각 장식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