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릉의 복원과 관련하여 불거졌던 남한과 북한의 대립은 역사의 진위와 관련된 논란과 오해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 ,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백산자료원), 1994 김교경, 단군릉에 나온 사람뼈에 대한 연대측정결과, 단국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백산자료원), 1994. ... 단군릉 발굴 소식에 접한 나의 가슴은 한세대에 가장 걸출한 두 분의 위인을 모시고 사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한껏 들레이고 있고 또 이를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북한 역시 이런 남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민족주의의 재정립을 목표로 한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기 시작한다. ... 7) 우실하, 앞의 책, 129쪽 8) 위의 책, 135쪽 이후 중국의 동북아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표명한 한국, 1993년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북한의 대대적인 단군릉 ... 『한단고기』가 처음으로 소개되면서 우리 민족의 잊혀졌던 고대사에 대한 일대 붐이 일어났고,②북한에서는 이런 남한 측의 논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보였으며, 1993년에는 단군릉을
이러한 경향이 극단화되어 나타난 것이 최근의 단군릉 발굴이다. 북한은 1993년에 평양 대박산에 있던 석실봉토분이 단군릉이라고 발표하였다. ... 북한에서의 연구 결과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정치적 의도들이 투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변화자체가 아니라, 최근의 단군릉발굴에서 보여지듯이 남북한의 역사인식 자체가 ... 이러한 주장을 위해 제시된 논거들의 비논리성과 비약은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은 단군릉의 실존을 말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이 정설로 해 왔던 요동 중심설을 부정하고, 평양 중심설을 채택하였다
옛날부터 단군릉으로 주장해오던 이 지방 인사들이 일제시대에 단군릉 수호에 나선 것은 이해할만 하다. ... 북한의 단군릉 복원은 한 마디로 잘못된 것이다.이른바 단군릉은 1936년에 강동군 유지들이 돈을 모아 석상(石箱)과 정자각(丁字閣), 그리고 단군의 기적비(紀蹟碑)를 세워놓았는데, ... 단군을 국조(國祖)로서 존숭하는 일과 단군릉을 복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발굴한 이후 단군릉에서 나온 유물에 대한 측정 결과 '단군이 지금으로부터 5011년 전에 출생한 인물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판명되었고, 따라서 건국시기도 서기전 3000년 초기가 ... 되어야 하며, 도읍지도 머나먼 요동지방이 아니라 응당 단군릉이 자리 잡고 있는 평양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평양과 압록·두만강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활동을 전개하여 ... 북한에서의 단군에 대한 인식 북한에서는 "단군이란 인물이 조선의 역사를 창건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기에 이를 연구 분석 한다"고 하여 단군의 실재설을 전제하고 연구를 한다. 1993년 단군릉을
화석으로 발굴된 남녀 { 단군릉이란 말은 단군의 무덤을 뜻으로 한다. 북한측은 예전부터 단군릉이라 전해 내려오는 무덤을 발굴해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 { 북한측은 단군릉에 묻힌 사람은 단군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단군릉이 고구려양식인 이유는 고구려시대에 무덤을 개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