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에 입각하여 평양중심설을 주장했으나, 요동설로 공식적 입장이 정리된 이후 이 같은 견해가 제기되지 못하다가 최근 단군릉 발견이 공식적으로 공표되면서 새로운 입장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 또한 근래 북한에서 단군릉을 발굴해 나온 뼈를 연대 측정했더니 5천 년 전의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고 하여 단군신화에서 전하는 연대와 대체로 부합한다고 주장하나, 이들이 사용한 ‘전자스핀공명법
남한과 다르게 북한에서는 거의 인정 되지 않다가 최근의 단군릉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릉 이 발 견 됨으로서 북에서 이과 같은 논문이 다시 나오고도 있다고 합니다. 3 중심지 이동 설 ... 하지만 1993년 이후 평양 부근에 ‘단군릉’으로 추정 되는 곳을 발굴한 이후로 대동강 중심지설이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2대동강 중심지 설 : 우리나라의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용한 단군릉 측정방법의 정확성 문제 등 의문점이 허다해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다. ... 한편, 최근의 북한 학계는 단군릉 조성을 계기로 고조선 개국 시기를 기원 전 3000년쯤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오차범위가 커서 역사 이전 지질시대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전자스핀 공명법'을 ... 최근 북한 학계도 단군릉 조성을 계기로 그간 끈질기게 주장해오던 요동 중심 설을 포기하고 대동강 중심설로 급선회하고, 나아가 대동강 유역이 민족문화의 발상지라는 대동강 문화론으로 확대하고
또한 1993년 북한의 단군릉 발굴은 고조선 건국시기에 대한 많은 논란을 낳았다. ... 또한 단군릉에서는 왕관의 금동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그것은 청동에 도금을 한 것이었다. ... 먼저 북한의 단군릉 발굴과 함께 주장되는 북한의 기원전 3000년~2900년설에 대해서 알아보자.
정약용 등의 실학자를 거쳐 이병도, 송호정, 그리고 단군릉 발견 이후의 북한학계 ② 요령 중심설 : 정도전, 권람, 일제강점기의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 ... 북한에서는 최근 단군릉발굴보고를 발표하여 단군관련 유적을 정비하는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이 발표를 통하여 북한학계는 1990년대 후반에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