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실패가 주는 교훈
- 최초 등록일
- 2008.06.26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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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학교 인물로 보는 한국사 교양수업
주제는 내가 고려말의 지도층이었다면..이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이것이 여말선초의 권력자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고려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이성계와 정도전, 권근, 조준 등을 비롯하여 고려 안에서의 개혁을 고집하던 정몽주, 이색 등 많은 권력자들이 칼날 위의 싸움을 펼쳤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학자이거나 정치가였지만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과연 그들의 선택은 옳았을까? 나는 조선을 개국한 일등공신이었지만 끝내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맞은 정도전을 평가하고 그의 행보에 있어 안타까운 점을 논해보고자 한다.
조선은 이방원의 집권 이후 지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교조적인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아 위계적이고 경직된 질서를 구축하였다. 또한 도전과 개혁의 정신은 쇠퇴하고, 안정과 보수의 정신이 주류를 이루었다. 정도전을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신명을 바쳤으나, 조선은 그를 버렸다. 이방원의 생각은 단순 명료했다.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권력이 안정되어야 하며, 왕조국가에서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신권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확고하게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그렇게 이방원에게 위협이 될 만큼 배포가 큰 인물이었다. 막연한 개혁이 아니라 주자학에 기초하여 조선왕조 건설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실현을 위한 권력에의 의지 또한 강하였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안목을 꼽았다. 정도전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겸비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정치가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정도전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정치가였다면 시대와 타협하는 법을 먼저 배웠을 것 이다. 그야말로 난풍의 시기에 타협도 하나의 덕목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자주적이고 민본적인 정략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참고 자료
최상용, <조선의 호걸, 철학자, 정치인 정도전을 다시 본다>, 2004
역사학자 18인,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