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세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 전쟁 이후 중세 봉건ㅔ적인 사회가 어떻게 근대로의 이행하게 되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 보고서입니다.
논설문이 아니기 때문에 서론은 없으며,
바로 본론격으로
1. 절대국가의 성립
2. 중세의 종언
으로 내용을 정리했으며...
결론에서 과거 중세사회와 무엇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나 논합니다.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정치적으로 절대국가의 등장
경제적으로 상업자본과 중앙정부의 결착. - 과거엔 중앙과 지방 장원과의 관계였다면.
사상적으로 초기 민족주의 등장.
내용은 짧지만 백년 전쟁의 결과에 대해 명료하게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참고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절대국가의 성립
(1) 戰 前의 왕권과 국가에의 귀속감
(2) 전 후 왕권의 강화 - 절대주의의 성립
1) 징세제도의 확립
2) 상비군과 징병제도
3) 중앙제도의 재정비
4) 지경의 확정과 제후령의 와해
5) 교황의 권위 쇠퇴
2. 중세의 종언
(1) 장원의 붕괴 - 정치 단위의 변화
(2) 기사계급의 몰락
(3) 교황의 권위 쇠퇴
3. 결론 - 근대로의 이행기
(1) 새로운 정치단위체의 등장
(2) 초기 민족주의의 등장
(3) 중앙정부와 상업자본의 결착
본문내용
3. 결론 - 근대로의 이행기
(1) 새로운 정치단위체의 등장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거치며 유럽에서 가장 먼저 절대국가를 출현시켰다. 그들은 오늘날 개념의 근대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의 국제질서는 더이상 봉건적 군신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결혼이나 봉작 등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 봉건적 연결 고리를 청산하는 계기를 맞을 수 있었다. 절대국가는 영토국가적인 성격을 띠었고, 또한 왕국 이상의 상위 정치단위가 없는 상태에서 금력과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군사국가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왕을 중심으로 한 애국심에 해당할 귀속감이 생겨나고 있었다는 점과 장차 부르조아가 될 상업 자본이 급성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국가적 경로에 올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유럽은 봉건국가만 존재하던 세계에 하나의 균열을 보았다. 이제 봉건제도와 절대국가가 병존하는 세계가 되었고, 최상위 정치단위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몰락한 상태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 이러한 국제질서가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여타 봉건왕조가 몰락하고, 근대국가의 확립과 확산이라는 전체적 방향성을 띠고 나아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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