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족부락과 한개마을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08.04.29
- 최종 저작일
- 2006.11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의 동족집단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많이 이루어져 왔다. 본 글에서는 이제까지 연구된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한국의 동족부락이 형성되고 전개해 나가는 역사적 흐름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성주 한개마을을 보다 잘 이해하고, 한개마을의 특색과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동족부락(동족마을, 집성촌, 동족촌, 씨족촌)
동족부락이란 1개의 성씨 또는 이와 관련된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면서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는 단위공간을 말한다. 즉, 마을에 존재하는 비교적 다수의 동성동본의 사람들이 조직체계를 갖거나 적어도 집단적 행동을 취하는 경우에 그 마을을 동족부락이라 한다.
목차
1. 머리말
2. 한국의 동족부락
1) 동족부락의 형성의 사회, 경제적 배경
2) 동족부락의 성립과 발달과정
3) 동족부락의 특색과 기능
4) 동족부락의 쇠퇴
3. 성주 한개마을
1) 한개마을의 형성
2) 풍수지리설로 본 한개마을
3) 한개마을의 문화재
4. 맺음말
본문내용
한국의 동족부락
1) 동족부락 형성의 사회․경제적 배경
①사회적 배경
-통치체제의 변화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중앙집권 체제와 지방양반 세력이 강화되었다. 모든 군현에 수령이 파견되었고, 지방양반 세력의 향촌 자치를 위한 기관을 설치하여 향리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면·리 제도를 정착시켜 인구의 증가와 자연 촌락의 성장을 도모하였다.
지방에서 성장한 양반세력을 중심으로 동족부락이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 것이다.
-사림세력의 성장⇒유교의 영향
사림 세력이 성장함에 따라 유교가 의․식․주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부계친족의 결속이 강화되면서 동족 중심의 문벌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족간의 결속 강화를 위한 족보 간행도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동족의식 강화와 함께 동족부락 형성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가문에서 고관직을 지냈거나 학식이 많은 선비를 중시조로 모시는 새로운 파를 형성하면서 직계손인 장자를 중심으로 집성촌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②경제적 배경
-조선시대의 가족제도는 점차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맏아들이 제사를 상속하게 되었고 균분상속이 아닌 차등상속이 보편화되었다. 맏아들을 중심으로 경제적 기반이 확보됨에 따라 장자를 중심으로 세력이 모인 결과 동족부락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경제기반이 토지중심의 1차산업, 즉 농업이었기 때문에 촌락을 지배하고 있던 양반들은 안정적인 노동력확보를 위해 혈연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으로 상부상조하는 협동체가 필요했다.
참고 자료
윤대원, 1993, 『한국근대사』, 풀빛
이해준, 1996, 『동족마을의 형성과 조직』, 민족문화사
정진영, 1995, 『조선 후기 동성촌락의 형성과 발달』, 역사비평 28
한필원, 2004,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1』, 북로드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 http://www.heritag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