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민족유일당운동
- 최초 등록일
- 2008.04.23
- 최종 저작일
- 2004.08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1920년대 민족유일당운동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신간회의 창립
2. 신간회 결성
3. 신간회 해소
본문내용
2) 정우회 선언
이런 과제를 앞에 놓고 분산된 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독립 운동의 역량을 높이고, 아울러 좌 · 우로 분열된 민족운동 전선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운동이 국내외에서 일어났다.
국내에서는 먼저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분열된 진영을 통합하여 통일된 당을 조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26년 11월 15일 공산당의 합법적 사상단체였던 정우회(正友會)가 사상 단체의 통일, 실제 투쟁을 통한 대중화, 경제 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의 전화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적극 제휴 등을 내용으로 한 행동 방침을 발표하였다. 정우회 선언에서 보듯이 사회주의 세력은 당시 조선 정세를 사회주의 혁명의 전단계인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파악하였다. 정우회는 이 선언을 한 이후 스스로 해체하고, 민족 협동전선을 이루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해나갔다.
다른 한편 민족주의 세력 중에는 ‘자치론(自治論)’을 주장하는 세력을 비판하며 절대 독립을 주장하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이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자치론을 철저히 비판하고 필요하다면 사회주의 진영과 반자치론 연합 전선을 구성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사회주의자들도 반자치론 측면에서 같은 입장을 보였다.
한편 국외에서는 1926년 중국 북경에서 한국독립유일당북경촉성회가 결성된 이후 유일당 운동은 상해, 남경, 광동, 만주 등지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만주에서는 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자유시 참변 이후 성립되었던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의 3부를 통합하려는 운동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28년 5월 길림성에서 좌 · 우파의 18개 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전민족유일당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통합 방법에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재만유일당 책진회와 국민부의 두 단체로의 통합에 그치고 말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