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독립기지건설
- 최초 등록일
- 2008.03.0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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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0년대 만주지역 독립기지 건설에 대한 리포트
목차
Ⅰ.머릿말
Ⅱ.본문
1.한인사회의 형성
2.만주지역의 항일 독립운동기지의 건설요인
3.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단체의 성립
본문내용
Ⅰ.머릿말
1910년 한반도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국권상실에 대한 항일민족운동이 전계되었다. 항일민족운동은 국내에서 보다 국외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계되어갔다. 그 가운데 서도 만주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기지건설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전개되었고, 3.1운동을 전후하여 해외 독립운동의 기지를 모체로 하여 많은 독립투쟁을 전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10년대의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기지 건설은 우리의 해외독립운동의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여기에서 만주지역의 한인사회 형성과 독립운동 기지건설의 요인 및 과정과 독립운동 단체설립에 대하여 살펴보아서 1910년대의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기지건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본문
1.한인사회의 형성
만주지역으로의 한인 이주와 정착은 19세기 후반 이루 점차 확대되었다. 처음 이주 한인은 주로 생계를 위해 고국을 떠나온 하층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삼정의 문란의 만연과 가혹한 수취, 기근을 견디지 못하여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초기 이주 한인의 대다수는 지리적으로 압록강, 두만강에 인접해 살던 주민들이었고, 이주지역 또한 북간도와 서간도에 집중되었다. 특히 1869년과 1870년 서북지방에 닥친 극심한 대흉년으로 서북지방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주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현실에서 조선정부는 만주로의 이주를 허용하자 한인이주는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고 이주자들에 의한 농경지 개간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후 1883년 서부 경략사 어윤중은 변경지역을 순회하면서 간도 상황을 직시하고, 중앙정부에 종래 월경금지로 일관하던 변방정책을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새로 개간한 땅에 한인의 간도 이주를 실질적으로 승인하였다.
한편 청 정부도 봉금정책의 실효성이 무의미해지자 이주를 억제하지 못하고 1875년 봉금령을 해제하게 된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간도개척을 위해 한인이주를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정책을 펴기까지 하였다.
참고 자료
김봉렬, 『해외 한인사회 항일독립운동기지 건설』 가라문화 18집 (2004)
김봉렬, 『1920년 만주지역 항일무장 투쟁의 추이』가라문화 19집 (2005)
한국 근현대사연구회, 『한국독립운동사강의』한울 (1998)
신용하, 『한국 항일독립운동사연구』 경인문화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