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가족생활
- 최초 등록일
- 2007.12.2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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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국의 문화와 가족생활에 대해 작성된 보고서입니다.
목차
Ⅰ. 사회 문화적 배경
1. 역사
2. 정치, 사회
3. 국민
4. 종교
5. 경제 및 우리와의 관계
Ⅱ. 결혼제도
1. 결혼과정
2. 결혼의식
Ⅲ. 가족생활
1. 부부관계
2. 시골가정
3. 도시가정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사회 문화적 배경
1. 역사
태국은 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국왕이 수상을 임명하며, 국왕은 전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예전에는 시암(siam)이라고 불렸으며 지금의 타이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나라이다.
(1) 수코타이 왕국(1238~1419): 타이 최초의 독립국
13세기에 와서 몽고족의 남방진출로 크메르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타이족 소왕국인 방양 왕국의 왕인 씨인트라팃이 1238년에 북부태국에 쑤코타이 왕국을 건국하여 짜오프라야 강을 기반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태국 문자의 발명, 미술, 조각, 건축과 문학 등 태국 예술 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왕의 지나친 불교관심으로 쇠퇴를 가져왔고 남쪽에서 아유타야 왕국이 출현한 이후 점차 약화,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멸망되었다.
(2) 아유타야 왕국(1350-1767): 왕권사상의 기반구축
14세기에는 수코타이와 다른 그 밖의 작은 왕국들을 차례로 병합해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1350년에 건립된 아유타야 왕국은 짜오프라야 강 남부 멀리까지 영토 하에 두었다. 1767년 버어마의 침략을 받기까지 태국 중심지의 역할을 했으며 외국에는 시암으로 알려졌다. 417년간 33명의 왕이 통치한 아유타야 왕국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켰고 아라비아, 인도, 중국, 일본 및 유럽과도 관계를 맺기도 했다.
아유타야 왕국의 붕괴 후에 탁신왕이 버어마를 몰아내고 `톤부리마`로 수도를 옮겨 왕국을 세우지만, 1782년 챠크리 장군에 의해 15년간의 탁신왕국은 막을 내린다.
(3) 챠그리왕국(1767-1932): 입헌민주주의의 기반구축
부르만들은 1767년 아유타야의 수도를 함락시켜 새로운 지역, 톤부리에 새 수도를 설립했다. 1782년에 이르러 차크리왕조의 초대 왕인 라마 1세가 차오프라야 강 유역의 방콕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현재의 왕궁은 이 기간에 2번째 왕이었던 챠크리장군 때부터 내려온 것이다
참고 자료
http://www.h5.dion.ne.jp/%7Epobinuri/tha_history.htm
태국대사관 http://www.thaiembassy.or.kr/thai.htm
한국태국학회 http://k-thaistudies.or.kr/thai_1_1.htm
http://www.thailand.co.kr/see_main2.htm
이상윤(1995). 태국사회와 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