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의 택리지 서평
- 최초 등록일
- 2007.12.19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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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중환의 택리지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택리지의 저자 “ 이중환 (1690 ∼ 1752)”
2) 택리지의 내용
(1)사민총론
(2)팔도총론
(3)복거총론
(4)총론
3.결론 - 나의 생각
본문내용
1. 서론
이중환이 쓴 <택리지>는 당대 18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인문지리서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폭넓은 관심을 모은 대중 교양서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내가 이중환의 이름과 그의 저서 <택리지>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지리 시간으로 지금은 시간이 흘러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수능에서도 택리지는 중요한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제의 주는 복거총론의 한 부분을 내어 놓고 이 부분이 생리, 지리, 산수, 인심 중 어느 것과 관련된 부분인지를 찾아내는 것으로 지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에게 있어서 택리지는 조금 더 애착이 가는 문제였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어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 북리뷰로 <택리지>를 말씀하여주셨을 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택리지>는 이 땅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이다. 이중환이 직접 두발로 온 나라의 흙을 밟고, 공기를 느끼고, 산을 바라보며 적은 글이었기 때문에 택리지는 단순히 자료를 모은 책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책이었다.
2. 본론
1) 택리지의 저자 “ 이중환 (1690 ∼ 1752)”
이중환(李重煥)은 숙종 16년인 1690년 당대의 명문인 여주 이씨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휘조(輝祖)이며, 호는 청담(淸潭) 또는 청화산인(靑華山人)이며, 아버지는 참판 이진휴이고 장인은 목임일이었다.
숙종 39년(1713) 24세 되던 해 증광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1717년 김천 도찰방이 되었으며, 경종 2년(1722)에는 병조 정랑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평소 목호룡과의 친분으로 인해 목호룡(睦虎龍)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조 1년(1725) 2월부터 4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형벌을 받았으며 이듬해 12월에는 절도로 유배되었다가 영조 3년 10월에 풀려나왔으나 그해 12월에 다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로 이중환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온갖 경험과 지식을 쌓는데 보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