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사]고려전기의 학교제도(국자감)에 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7.12.01
- 최종 저작일
- 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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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교육사[고려전기의 학교제도(국자감)에 대한 연구]
목차
연구배경
국자감 성립배경
국자감 입학자격, 교과과정 등..
본문내용
- 연구배경
국자감은 능력 있는 인재 양성이 주된 목적과 능력 있는 인재를 직접 국가에서 관리를 하고 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능력 있는 인재 선발을 위해 도입한 과거제도는 이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과거를 위한 교육으로 전락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급제하고자 하는 이들은 관학보다는 과거의 핵심을 집어주는 사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의 비슷한 양상을 갖는데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이 앞서는 지금 교육의 현실과 일맥상통하다. 따라서 고려사회는 관학의 강화책이 필요하였다. 이것은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 국자감의 진흥책으로 해결하려 한 것 같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숙종은 국자감에 서적포설치, 예종의 7재설치, 양현고설치, 궁내에 청연각과 보문각 설치, 인종의 국자감 경사6학 정비, 각 주현에 향학의 확대는 모두 국자감 즉 관학의 강화책인 것이다.
국자감은 고려시대의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지만 최초의 교육기관은 아니었다.
※학교에 대한 최초의 기록
『고려사』 학교설립에 관한 기록은 태조 13년(930)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조 13년에 왕이 서경에 가서 학교를 창설하고 수재 정악을 서학 박사로 임명했으며 따로 학원을 창설하고 6부의 생도를 모아 교수하였는데 후에 태조가 그 학업이 진흥된다는 말을 듣고 비단을 주어 이를 장려하였으며 여기에 의학과 복학의 두 과목을 병설하고 또 창고의 곡식 100석을 주어 교육비로 쓰게 하였다."
이상에서 서경에 학교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개경에 관학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도 없는 교육시설을 서경에 먼저 설립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개경에 관학이 운영되고 있었다면 최고 인문교육시설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아마도 국학이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임동철,『고려전기의 국자감에 관한 연구』, 대구대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2001.
박재문, 『한국교육사』, 서울:학지사, 2001.
김영우외. 『敎育史 ․ 敎育哲學』, 서울:교육과학사, 2003.
장덕삼, 한국교육사, 서울:동문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