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의병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10.30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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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한말의 의병운동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의병의 시작
2. 의병(義兵)의 재기
3. 의병(義兵)전쟁(戰爭)의 확산(擴散)
4. 독립군(獨立軍)으로의 전환
본문내용
한말의 의병운동
1. 의병의 시작
한말(韓末) 최초의 의병(義兵) 항쟁(抗爭)은 1896년 1월에 시작하여 그 해 9,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을미의병(乙未義兵)이라 부르는 이 의병(義兵)봉기(蜂起)는 1895년 8월 20일에 일어난 일인의 민비시해사건(閔妃弑害事件)인 을미사변(乙未事變)과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일환으로 강제 추진되어 1895년 11월 15일에 단행된 단발령(斷髮令)이 중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주의(人道主義)의 입장에서 볼 때 있을 수 없는 참변(慘變)이며, 국제적(國際的)범죄라고 할 을미사변(乙未事變)은 개항(開港) 이래 일제 침략을 증오하던 국민의 항일(抗日) 의식을 격앙시키고 말았다. 더구나 그 동안 위정척사 운동을 주도하여 오던 전국 유생과 보수적 전직 관료들은 이 때야말로 일제를 몰아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미사변(乙未事變)을 당한 친일(親日) 정부는 일제에게 휘말리어 이와 같은 국민이나 유생들의 동향은 아랑곳없이 그 미봉에 급급하여 사후 처리를 그르치고 말았다. 이 시역의 주동자와 그 하수인들인 삼포(三浦) 일본(日本) 공사 이하 일본(日本)낭인(浪人)들의 죄는 묻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민비(閔妃)를 죄인으로 만들어 폐위시키는 조칙(詔勅)을 발표하였다.
당시 일본(日本)군(軍)을 배경으로 한 일제 세력(勢力)이 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같은 상소 항쟁(抗爭)만도 생명을 내놓고 하는 것이니, 그들 유생들의 서릿발 같은 의리(義理)관(觀)과 기개를 짐작하게 한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일환으로 단행된 단발령(斷髮令)도 을미사변(乙未事變) 못지 않게 국민을 격분시키고 특히 위정척사론을 바탕으로 한 수구적(守舊的) 사상을 견지한 유생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