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여왕마고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7.06.20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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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여왕 마고>를 보았다.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은 프랑스 종교전쟁에서 있었던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사건’이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프랑스 종교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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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화 <여왕 마고>를 보았다.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은 프랑스 종교전쟁에서 있었던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사건’이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프랑스 종교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보았다.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1520년경부터 프랑스에도 파급되기 시작하였고, 장 칼뱅을 중심으로 칼뱅주의가 형성되었다. 후에 칼뱅은 파리에서 추방되었으나 프랑스에서는 구교와 신교간 양파의 분쟁이 심해져 갔다. 앙리 2세 시기에, 프랑스의 신교는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칼뱅파의 교리와 조직을 완전히 수용하여 위그노라는 집단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16세기 후반에는 8차례나 종교 전쟁(위그노 전쟁)이 일어났다. 종교적 분열은 <여왕 마고>에서 묘사되는 사건인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사건’과 같은 대참사까지 야기시켰다. 1589년에는 앙리 3세가 암살되고, 공식적인 왕위 계승자가 된 앙리 드 부르봉(앙리 4세)는 무력을 이용, 왕국의 회복에 나선다. 가톨릭세력은 왕위후보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하였고, 긴 전쟁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갈망하였다. 앙리 4세는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한 뒤 ‘낭트칙령’(1598)을 반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내란을 수습하였다.
앙리 2세의 사망 후 앙리 4세가 즉위하기까지 프랑스는 그야 말로 혼란기였다고 할 수 있다. 16세기의 프랑스 절대주의 왕권은 종교전쟁으로 약화되었다. 앙리 2세의 사망 이후 왕이 된 프랑수아 2세는 불과 일년 반 후에 병으로 죽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즉위한 동생 샤를 9세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이 때부터 왕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섭정을 시작하게 된다. 제3차 종교전쟁이 끝난 후, 마고의 어머니 카트린은 신-구교간 평화의 분위기를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딸을 신교국과 혼인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복잡한 구교와 신교간의 전쟁과 권력 쟁탈을 배경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는 카트린의 주장대로 구교와 신교간의 평화연합을 위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마고)와 나바르의 왕 앙리 드 부르봉(앙리 4세)의 결혼으로 시작한다. 1572년 8월, 결혼식을 위해 신-구교도가 모두 파리에 모인다. 두 종교간의 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결혼식이 거행됨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카트린은 결혼식이 끝나고 신교의 꼴리니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지만 꼴리니는 죽지 않고 부상을 입게 된다. 이 사건으로 신-구교 양쪽 모두 긴장감이 훨씬 증폭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긴장감을 깨 버리고 먼저 선수를 친 쪽은 가톨릭 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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