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루소에밀
- 최초 등록일
- 2007.01.0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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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중심사상 정리
(1) 유아기의 교육
(2) 아동기(소년기)
(3) 중간 교육기
(4) 청춘기의 소년을 위한 감정교육 및 종교교육
(5) 바람직한 시민에게 요구되는 사항
3. 중심사상에 대한 나의 견해
4. 가장 인상 깊은 부분과 그 이유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루소는 1712년 프로테스탄티즘의 기풍이 강하고 교회의 발언권이 높았던 스위스의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일생을 두고 모성을 갈망했지만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사유와 감성의 기반을 다졌다. 특히 플루타르크의 <전기>는 그에게 일찍이 자유와 고고한 인품을 지향하는 공화주의적인 면모를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한 결투사건으로 제네바를 떠나자, 어린 루소는 제네바 교외에 있는 랑베르시에 목사 댁에서 라틴어수업과 종교수업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춘기 직업수련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루소는 16세인 1728년에 고향을 등지고 바랑 부인의 도움으로 당시 사르디니아령이었던 안느 시에 정착했다. 이 때 음악수업을 받아서 악보필사라는 평생 업의 기반을 갖게 되었으며 철학, 역사, 종교, 기하, 대수,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독학으로 섭렵했다. 1741년 루소는 자신이 창안한 새로운 기보법으로 성공해보겠다는 결심 속에 파리로 향했다. 기보법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루소는 디드로 등 당시 지식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1745년에 그는 하숙집 하녀였던 떼레즈 르봐쇠르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떼레즈 가족과의 생활은 상당한 정도로 그의 삶을 규정하고 당시 지식인들과의 교류 및 사교 생활을 제한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하여금 민중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1750년 <학문예술론>이 디종의 아카데미 공모에 당선되면서 그는 유럽 지성계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자작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궁정에서 연주되고 갈채를 받는 영광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연금을 거부하고 사교계를 떠나서 악보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이른바 <자기 개혁>을 단행했다. 1753년에 <인간불평등기원론>의 과격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이 때부터 유럽 문명의 대변자인 볼테르와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그는 에피네 부인이 제공한 <은자암>에 머물면서 <사회계약론>과 <에밀>, <누벨엘로이즈> 등의 저술을 구상하던 중 부인의 시누이인 우드토 부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디드로, 그림 등 철학자들과 불화를 겪게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당시의 철학자들이 공모하여 자신을 핍박한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1762년 <사회계약론>과 <에밀>의 출판과 함께 도피의 여정을 걷게 되면서 루소의 피해망상증은 더욱 악화되었다. 1765년 다시 프랑스에 돌아온 그는 악보필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떼레즈와 정식 결혼을 했다. 1770년 <고백록>이 출간되었으며, 1778년에 그의 고달픈 삶은 마감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