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6.09.1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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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열왕국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영토,지리적,종교적,정치적,사회적,경제적인 상황에 대한 비교
목차
1.영토의 크기
2.지리적 위치
3.정치적,역사적 상황
4.종교적 상황
5.사회적,경제적 측면
본문내용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비교
솔로몬 이후부터는 두 분열 왕국은 각각 그 자체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때때로 두 왕국이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때도 흔했다.
그러면 두 왕국을 서로 비교해 보자.
1.영토의 크기
북 이스라엘은 남유다의 세배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2.지리적 위치
북이스라엘 - 동에서 서로 통하는 주요한 도로인 도단 평지와 세겜 협로가 있었다.
샤론평지, 이스르엘 평지, 갈릴리, 북부 트랜스요르단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중해와 바로 통할 수 있었고, 페니키아 및 다메섹과 긴밀하게 교통할 수 있었으며, 트랜스요르단을 통과하는 남북으로 난 교역로를 관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교통의 관문들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국제 무역으로부터 유다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남유다 - 사해의 동쪽 명이 장애물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를 가로질러 동에서 서로 통하는 도로는 거의 없었다.
3.정치적 ∙ 역사적 상황
북이스라엘 -수도가 자주 바뀌어 고정된 수도의 전통이 형성되지 않았고, 왕족의 전통 또한 오랫동안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권 또한 고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9명의 왕 중 8명이 정치적 살해를 당하여 희생되었고 희생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왕조가 바뀜으로 인하여 안정을 누릴 틈이 없었다.
이렇듯 북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내란과 유혈의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남유다 - 북이스라엘과 달리 다윗왕권의 영향으로 왕위 계승이 일정하게 계속될 수 있었고, 왕위 계승 투쟁은 다만 다윗 왕가 내에서만 일어났을 뿐이었다.
게다가 유다는 예루살렘에 안정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